황만영 黃萬英

의병 지원·신흥학교 재정·신간회 울산지회장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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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875 ~ 1939
시대일제강점기
본관평해 황씨

생애 약력

황만영(黃萬英, 1875~1939)은 울진 평해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본관은 평해입니다. 호는 국오로 소개됩니다. 위키백과 평해 황씨 항목은 그를 해월 황여일의 11대손으로 정리합니다. 1875년 6월 20일 강원도 평해에서 태어나 숙부 황원에게 입양되었고, 한문을 배운 뒤 농업에 종사했다고 합니다. 사망일은 1939년 4월 24일 또는 25일로 자료마다 하루 차이가 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그는 평해에 주둔하던 의병진에 군자금 800냥을 전달해 의병 활동을 도왔습니다. 1907년에는 신민회에 가입하고 대흥학교를 세워 인재 양성에 힘썼다고 전합니다. 1910년 국권을 잃은 뒤 간도로 망명해 유하현 삼원보에서 이시영 등과 함께 신흥학교의 재정을 맡았고, 문창범·이상설 같은 애국지사들과 교류했습니다. 1919년 3·1운동 때는 주진수와 함께 만주를 돌며 순회강연을 해 항일 의식을 높였습니다.

이후 임시정부에 참여해 군자금을 모으러 국내에 들어왔으나, 일제의 감시로 만주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1927년에는 신간회 울산지회 회장으로 선임되어 항일운동을 이어 갔습니다. 정부는 1995년 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습니다. 평해읍에는 1976년 12월에 세운 기념비가 있으며, 경북남부보훈지청은 이 비를 2023년 2월의 현충시설로 선정했습니다. 평해 월송정 옆 시조단 앞에도 그의 공훈을 기리는 비가 있다고 전합니다. 일부 소개 글이 말하는 임시정부 교통부 차장 내정 등은 이번 조사에서 공훈록 원문으로 확인하지 못해 적지 않았습니다.

묘소

묘소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울진군 평해읍에 1976년 세운 기념비가 있습니다.

황만영 자주 묻는 질문

황만영은 어떤 독립운동가인가요?

의병 군자금을 지원하고 만주 신흥학교 재정을 맡았으며 신간회 울산지회장으로 활동한 울진 평해 출신 독립운동가로,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습니다.

황만영 기념비는 어디에 있나요?

울진군 평해읍에 1976년 12월에 세운 기념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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