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 3·1운동 · 대통령장(1962)
| 생몰 | 1873 ~ 1956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전주 이씨 |
이명룡(李明龍, 호 춘헌春軒, 1873~1956)은 평안북도 철산 출신으로 1892년 개신교에 입교한 뒤 학교를 세워 교육 사업을 벌였습니다. 1911년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 바 있으며, 최남선·이승훈의 권유로 1919년 3·1운동 때 장로교 대표로 민족대표 33인에 참여했다가 다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했습니다.
광복 후에는 평안남도에서 조만식의 조선민주당 창당에 참여하고 평동중학교 설립에도 관여했으나, 둘째 아들이 반공 활동 중 소련군정에 체포되어 실종되는 일을 겪은 뒤 1947년 월남했습니다. 이후 아시아민족반공연맹 한국지부 이사를 지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