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영 鄭宗榮

청백리에 녹선된 조선 중기 문신, 육조 판서를 모두 거쳐 우찬성·판중추부사로 치사(호 항재, 시호 정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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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513 ~ 1589
시대조선 중기
본관초계 정씨

생애 약력

정종영(鄭宗榮, 1513~1589)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초계이며 자는 인길(仁吉), 호는 항재(恒齋), 시호는 정헌(靖憲)입니다. 현감 정숙(鄭淑)과 충의위 김계훈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고, 김안국의 문인입니다. 할아버지는 중종반정 정국공신 정윤겸으로 전해지며, 정난정은 정윤겸의 딸이라 정종영에게는 고모가 됩니다.

1543년 문과에 급제하여 호조좌랑·헌납·지평·교리 등을 지냈고, 1552년 청백리에 녹선되었습니다. 강원·경상·전라도 관찰사를 역임하며 팔계군(八溪君)에 봉해졌고, 1563년 평안도 관찰사로 있을 때는 평양에 서원을 세워 서북 지역의 학문 진흥에 힘썼습니다. 1567년에는 진향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육조 판서를 모두 거친 뒤 우찬성을 지내고 판중추부사로 치사했습니다.

경상감사 시절 부정을 저지른 수령과 승려를 엄히 다스렸다는 일화가 있고, 치사할 때에는 백관이 한강변까지 나와 전송했다고 전합니다. 이준경은 그를 '정금미옥(精金美玉)'에 비유했습니다. 1589년 원주에 내려갔다가 그해 8월 77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숙종 때 시호가 내려졌습니다.

제향과 후손

1638년(인조 16) 칠봉서원에 배향되었고 원주 운곡서원에도 배향되었다고 합니다. 선취는 문화 유씨, 후취는 성주 이씨이며 4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로는 정약·정열·정묵·정혹이 있고 정혹은 문과에 급제해 관찰사를 지냈습니다. 기록에는 내외 증손과 현손을 합쳐 2천여 명에 이른다고 하며, 횡성 공근면은 지금도 초계 정씨의 집성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묘소

묘소는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공근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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