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왕후 시대 윤원형의 첩에서 정실이 된 인물, 서얼 차별 완화 건의와 보우 천거로도 알려졌으나 평가가 엇갈림

| 생몰 | 1506 ~ 1565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초계 정씨 |
정난정(鄭蘭貞, 1506~1565)은 조선 중기의 인물로 본관은 초계이며, 한성부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오위도총부 부총관을 지낸 정윤겸이고, 어머니는 역모에 연좌되어 정윤겸 집에 분배된 노비 출신의 차실 남씨로 전하며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2남 3녀 가운데 막내딸로 어릴 때 집을 떠나 기생이 되었다고 하나, 이는 후대의 전승이므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는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의 눈에 들어 첩이 되었고, 김안로 사건 이후 윤원형의 정실 연안 김씨가 쫓겨나면서 사실상 집안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1553년(명종 8) 문정왕후의 전교로 적처(嫡妻)가 되어 외명부 종1품 정경부인에 올랐다고 합니다. 문정왕후의 신임을 얻어 궁궐을 드나들었고, 상권을 장악해 많은 재산을 모았다고 전해집니다. 자녀는 4남 2녀로 전하나 가계도에는 아들 4명과 사위 2명이 나옵니다.
그는 능력 있는 서자와 서녀를 등용하자고 문정왕후에게 건의한 일이 알려져 있고, 윤원형의 상소와 함께 서자도 벼슬길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승려 보우를 문정왕후에게 소개해 선종과 교종이 부활하고 도첩제가 다시 시행되는 등 불교가 잠시 융성했다고 합니다(보우의 직책을 선종판사로 쓰는 자료와 병조판서로 쓰는 자료가 엇갈립니다). 1565년 문정왕후가 죽자 사림의 탄핵이 이어졌고, 윤원형의 계모 강씨가 정난정이 연안 김씨를 독살했다고 의금부에 고발했습니다. 정난정은 천민으로 강등되어 황해도 강음으로 유배되던 중 그해 11월 13일 독이 든 술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윤원형도 뒤따라 자결했다고 합니다.
사림파는 정난정을 '악녀의 대명사'로 불렀고, 이 이미지는 야사와 민담, 연극과 드라마의 소재로 이어졌습니다. 반면 서얼 차별을 누그러뜨리는 정책을 건의한 점은 당시로서는 신분제의 근간을 흔드는 시도였다고 평가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독살 혐의는 '고발된 사실'이지 입증된 사실로 확정된 것은 아니며, '사약을 받고 죽었다'는 이야기는 사림의 원한이 반영된 후대 전설로 해석됩니다. 이 항목은 평가를 내리기보다 기록된 사실과 서로 다른 견해를 나란히 두었습니다.
경기도 파주시 교하(당하동) 선산 근처에 묻혔다고 합니다. 묘 앞의 비석은 조선이 멸망한 뒤에야 세워졌다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