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곡시고』를 남긴 시인·문신, 청주 정씨 설곡계 중시조, 호 설곡

| 시대 | 고려 후기 |
| 본관 | 청주 정씨 |
정포(鄭誧)는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중부(仲孚), 호는 설곡(雪谷)이며 청주 정씨 설곡계의 중시조입니다. 도첨의찬성사 정해의 손자이고 판선공 정책의 아들이며, 최문도의 사위입니다. 설곡계의 중시조 이름은 자료마다 鄭誧 또는 鄭鋪로 적습니다. 위키백과는 정포를 정오의 아우로 정리합니다.
1326년(충숙왕 13) 과거에 급제했고, 얼마 뒤 예문수찬으로 원나라에 표를 올리러 가다가 귀국 중이던 충숙왕을 만나 총애를 받았습니다. 충혜왕 때 전리총랑에서 좌사간대부가 되어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고자 상소했다가 도리어 파면되었고, 원나라로 망명하려 한다는 참언으로 울주에 유배되었습니다. 유배 중에도 태연자약하며 풍류생활을 즐겼다고 합니다.
유배에서 풀리자 다시 원나라로 건너갔고, 원의 승상 별가불화가 그를 한번 보고 호감을 느껴 황제에게 추천했으나 얼마 뒤 37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최해의 문인으로 이곡 등과 사귀며 시문과 글씨에 뛰어났고, 시집 『설곡시고』와 『설곡집』이 전합니다.
『설곡시고』는 아들 정공권(정추)이 밀직제학으로 있던 1375년에 편집하고 이듬해 각판·인쇄한 2권 1책의 목판본 시문집입니다. 권 머리에 이색의 「설곡시고서」와 이제현의 「설곡시서」가 있고 권 끝에는 1376년 이방한이 쓴 발문이 있습니다. 1981년 3월 보물로 지정되어 서울 중구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색은 그의 시를 ‘맑아도 고고하지 않고 화려해도 음탕하지 않아 말의 기운이 우아하고 심원하다’고 평했습니다.
그는 상소 때문에 파면되고 참언으로 울주에 유배되는 등 순탄하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이제현의 「설곡시서」에는 그의 불행한 일생을 안타까워하는 글귀가 있어 인물됨과 재식을 짐작하게 합니다. 일생이 순탄하지 않았으나 그런 체험을 품격 있게 형상화했다는 점이 평가됩니다.
아들 정추를 거쳐 손자 정총·정탁(鄭擢) 형제가 조선 개국공신이 되었고, 호성공신 정곤수와 학자 정구도 이 계통에 속합니다. 옹진파·장단파·성주파·춘곡파·숙천파 등으로 나뉘는 설곡계는 이렇게 정포 한 사람의 글 재주에서 시작해 여러 세대의 문신 가문으로 이어졌습니다.
묘소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들 정추, 손자 정총·정탁(擢) 등으로 이어집니다.
정포의 시와 산문을 모은 문집으로 1376년에 간행되었고 1981년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