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군에 봉해진 공민왕 때 1등공신, 청주 정씨 설헌계 중시조, 호 설헌
| 시대 | 고려 후기 |
| 본관 | 청주 정씨 |
정오(鄭䫨)는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사겸(思謙), 호는 설헌(雪軒), 시호는 문극(文克)입니다. 찬성사 정해의 손자이고 판도판서 정책의 아들이며, 청주 정씨 설헌계의 중시조입니다. 생몰년은 이번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과거에 급제해 1330년(충혜왕 즉위년) 성균승으로 인사를 맡았고 이어 감찰장령이 되었으나, 이듬해 왕을 비방했다는 내인 최안계의 참소로 이문소에 투옥되어 장형을 당했습니다. 1351년(공민왕 즉위년) 동지밀직사사가 되고 이듬해 지밀직사사로 승진하면서 원나라에서 왕을 수종한 공으로 1등공신이 되었습니다.
1354년 첨의평리에 올라 서원군(西原君)에 봉해졌고 뒤에 추충진의보리공신에 봉해졌으며, 원으로부터 정동행성 유학제거에 제수되기도 했습니다. 아우 정포와 함께 어머니의 고향인 안동의 전답을 물려받아 풍산 회곡리에 옮겨 살면서 청주 정씨의 안동 입향조가 되었다고 전합니다.
공민왕은 원나라에서 오래 머물다 1351년 고려 왕에 올랐습니다. 정오는 그 즈음 동지밀직사사에 오르고, 이듬해 원나라에서 왕을 수종한 공으로 1등공신이 되었습니다. 이는 몽골의 영향력이 컸던 시기에 원과 고려를 오가는 신하로서 신임을 얻었음을 보여 줍니다.
정오와 정포가 안동 풍산 회곡리에 터를 옮겼다는 전승은 청주 정씨가 경북 북부와 인연을 맺게 된 출발점으로 이해됩니다. 설헌계는 이후 안동·예천·문경·영주에 퍼졌고, 약포 정탁(鄭琢)과 안동의 정사성 등이 이 계통의 인물로 꼽힙니다. 위키백과는 설헌과 설곡을 7세로 정리하지만 세대 계산은 자료마다 다르다는 점을 밝힙니다.
1331년 그는 왕을 비방했다는 나인의 참소로 이문소에 갇혀 장형을 당했습니다. 이문소는 원나라 간섭기 정동행성에 설치된 사법 기관으로 고려 신료를 처벌하는 데에도 쓰였으며, 그 시절 신하들이 참소를 받기 쉬웠음을 알려 줍니다.
묘소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설헌계: 안동·예천·문경·영주 등 경북 북부에 세거합니다.
청주 정씨 설헌계(雪軒系)의 중시조입니다. 동생 정포는 설곡계의 중시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