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왕 때 도첨의찬성사에 오른 문신, 시호 장경
| 생몰 | 1305 |
| 시대 | 고려 후기 |
| 본관 | 청주 정씨 |
정해(鄭瑎, ?~1305)는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주(淸州), 초명은 정현계(鄭玄繼), 자는 회지(晦之)입니다. 대장군 정의의 손자이며 밀직사사·판삼사사·도첨의찬성사 등을 역임했습니다. 시호는 장경(章敬)입니다.
부모를 일찍 여의었으나 학문에 힘써 과거에 급제하고 비서교감에 보임되었으며, 충렬왕 초에 대상부녹사로서 서기직인 필도치가 되어 왕을 따라 원나라에 다녀온 뒤 합문지후에 올랐습니다. 1292년(충렬왕 18) 우승지가 되어 인사행정을 맡으며 공정하다는 평을 들었고, 지신사·부지밀직·남경유수·광릉부윤을 거쳐 1298년 지밀직사사에 올랐으나 한희유를 무고한 사건으로 이듬해 파직되었습니다.
1303년 첨의참리에서 밀직사사가 되고 이듬해 판삼사사를 지냈으며, 1305년 도첨의찬성사에 이르렀다가 별세했습니다. 그해 지공거로서 한종유·김영돈·장자빈 등을 선발했고, 원나라로부터 정동행성낭중·유학제거에 제수되기도 했습니다. 외유내강의 성품으로 마음은 너그럽고 조용하되 일에는 민첩하고 용감하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정해는 1292년 우승지로 인사행정을 맡아 공정하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1298년 지밀직사사에 오른 직후 한희유를 무고했다는 사건에 연루되어 이듬해 파직되었고, 몇 해 뒤인 1303년 다시 복귀해 최고위직까지 올랐습니다. 고려 후기의 권력 구조에서는 이런 파직과 복귀가 드물지 않았습니다.
1305년 지공거로서 한종유·김영돈·장자빈 등을 선발한 일은 그가 문신으로서 학문적 신망을 얻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의 손자 정오·정포 형제 대에 가문은 설헌계와 설곡계로 갈라졌고, 두 계통 모두 문신 가문으로 이름을 얻었습니다. 정해는 조부 정의의 무반 가문에서 문신 가문으로 전환하는 중간에 선 인물로 이해됩니다.
묘소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손자 정오·정포가 각각 설헌계·설곡계의 중시조입니다.
정오는 정해의 손자입니다. 정오의 아버지가 정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