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의 문인, 안동 출신 학자, 호 지헌, 임진·정유 때 의병에 가담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청주 정씨 |
정사성(鄭士誠)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명(子明), 호는 지헌(芝軒)이며 안동 출신입니다. 아버지는 사섬시첨정 정두이고 어머니는 안동 권씨 권식의 딸입니다. 아우가 문신 정사신입니다. 생몰년은 이번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7세 때 김언기에게 수학하고 10세 때 구봉령에게 옮겨 배우다가 1561년(명종 16) 이황의 문하에 들어갔습니다. 1568년(선조 1) 진사시에 합격했고 1587년 태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1589년 관직을 사퇴하고 낙향했다가 1591년 다시 집경전참봉과 내자시 봉사·주부를 거쳐 양구현감으로 나갔습니다. 곧 낙향해 학문 연구에 힘썼습니다.
1596년 『역학계몽질의』를 썼고, 이듬해 창녕의 화왕산성에서 곽재우와 같이 의병활동에 가담했습니다. 1731년(영조 7) 옥계서원에 제향되었다가 철향된 뒤 1779년(정조 3) 학암리사에 제향되었습니다. 저서로 『지헌문집』·『역학계몽질의』 등이 있습니다.
정사성은 어린 시절 여러 스승을 거쳐 1561년 이황의 문하에 들어갔고, 이는 안동에 터를 잡은 청주 정씨 설헌계가 퇴계학파와 이어지는 지점으로 이해됩니다. 이황의 제자들 가운데 지방에서 학문에 정진한 선비의 한 사람으로 그의 이름이 전합니다.
그는 관직에 오래 머물지 않았고 학문 연구를 중시했습니다. 1596년 『역학계몽질의』를 써서 주자의 『역학계몽』을 의문점별로 정리했고,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곽재우와 함께 창녕 화왕산성에서 의병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이 화왕산성 방어는 조선 의병의 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1731년 옥계서원에 제향되었다가 철향되었고, 1779년 학암리사에 다시 제향되었습니다. 서원 제향이 정치적 상황에 따라 바뀌곤 했던 조선 후기의 사정이 그의 사례에도 나타납니다. 아우 정사신은 문과에 급제해 장례원판결사와 밀양부사를 지냈습니다.
묘소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지헌(芝軒)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