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졸에서 판도판서에 오르고 조선 개국공신 2등으로 은천군에 봉해진 무신
| 생몰 | 미상 ~ 1395 |
| 시대 | 고려 말·조선 초 |
| 본관 | 배천 조씨 |
조기(趙琦, ?~1395)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활동한 인물로 본관은 배천입니다. 생년은 전하지 않으며, 군졸로 관직에 나아가 최영 휘하에서 활동하며 판도판서(版圖判書)까지 올랐다고 소개됩니다. 판도판서는 호구와 토지, 조세 등을 맡던 판도사의 으뜸 벼슬로, 신분이 높지 않았던 사람이 군공으로 중앙 관서의 판서에까지 이른 경우로 볼 수 있습니다. 가계에 대해서는 아들 조순화(趙順和) 한 사람이 기록되어 있고 그 밖의 가족 정보는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392년 7월 17일 이성계를 추대해 조선이 건국될 때 그는 개국 2등공신에 책록되었고 동지중추원사에 임명되었습니다. 개국공신은 새 왕조를 세우는 데 공을 세운 이들에게 내린 훈호로, 같은 배천 조씨의 조반도 같은 2등공신에 올라 두 사람이 한 왕조 창업의 명단에 함께 이름을 올린 셈입니다. 군호는 은천군(銀川君)이며, 은천은 배천 조씨의 시조 조지린의 출신지로 전하는 백주 은천현과 같은 이름이어서 후대에 은천군파라는 파명과도 연결되어 소개됩니다.
그는 1395년 등창이 발병해 약 25일 동안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시호는 충위(忠魏)로 전하는데, 자료에 따라 표기가 달리 적히기도 하므로 확인이 필요합니다. 지금 전하는 사료가 많지 않아 개국 이전의 구체적인 행적은 자세히 알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배천 조씨가 고려 말 문벌에서 조선 초 신진 세력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무신 출신 공신까지 배출했다는 점을 보여 주는 인물로 꼽힙니다.
조기는 군졸로 출발해 최영 휘하에서 활동하며 판도판서에 올랐다고 합니다. 판도판서는 호구·토지·조세를 맡던 관서의 책임자로 높은 벼슬이었고, 군공으로 이른 점에서 당시 신진 무인 세력의 한 예로 소개됩니다.
1392년 7월 조선 개국에 참여해 개국 2등공신이 되었고 동지중추원사에 임명되었습니다. 군호 은천군은 같은 개국공신 조반의 복흥군과 함께 배천 조씨 안의 두 큰 갈래 이름(은천군파·복흥부원군파)과 겹쳐 소개됩니다.
1395년 등창이 나 약 25일을 앓다 세상을 떠났다고 전하며, 시호는 충위로 소개됩니다. 사료가 적어 가계와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고, 아들 조순화가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묘소의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들 조순화(趙順和) 한 사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둘 다 조선 개국공신 2등에 오른 배천 조씨 인물입니다. 조기는 은천군, 조반은 복흥군에 봉해졌다고 소개되며, 두 사람의 직접적인 친족 관계는 이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위키백과 서술을 따라 충위(忠魏)로 소개하지만, 자료에 따라 표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