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판서를 지낸 조선 초기의 문신, 호 경은(耕隱)

| 생몰 | 미상 ~ 1444 |
| 시대 | 조선 초기 |
| 본관 | 배천 조씨 |
조서강(趙瑞康, ?~1444)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배천이며 호는 경은(耕隱)입니다. 조선 개국공신 2등 복흥군 조반의 아들로 전하며, 형제로 조서로·조서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생년은 전하지 않지만 1414년(태종 14)에 문과에 급제해 관직에 나아갔고, 1431년(세종 13)에는 《태종실록》 편찬에 참여했습니다. 실록 편찬은 임금이 세상을 떠난 뒤 그 재위 기간의 기록을 정리하는 국가 사업이어서, 사관의 문장력과 신뢰가 있어야 맡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1443년(세종 25)에는 이조판서에 올랐습니다. 이조는 문관의 인사를 맡은 관서여서, 그 판서는 육조 가운데서도 중요한 자리로 꼽힙니다. 이조판서를 지낸 뒤에는 사직을 청하고 아버지 조반의 별장이 있던 가정(佳亭)에 은거했다고 전합니다. 호를 경은(밭갈며 숨는다는 뜻)이라 한 것도 이런 만년의 삶과 어울립니다.
그가 은거한 가정의 풍경은 세종의 관심을 끌어, 임금이 궁중 화가를 보내 가정의 모습을 그리게 했고 이후 많은 선비가 가정을 주제로 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안평대군은 이 시문을 모아 《석호가정별업도》라는 서화집을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1444년에 세상을 떠났고, 묘소는 지금 인천광역시 석남동에 있어 1990년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호로 지정되었으며 배천조씨 종중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조선 초 문신 가문으로서 배천 조씨의 위상을 보여 주는 인물입니다.
1414년 문과에 급제한 뒤 1431년 《태종실록》 편찬에 참여했고, 1443년 이조판서에 올랐습니다. 아버지 조반이 개국공신으로 닦은 가문의 기반 위에서 문신으로 성장한 사례로 소개됩니다.
이조판서를 지낸 뒤 사직하고 아버지의 별장이 있던 가정에 은거했습니다. 세종이 화원을 보내 그 모습을 그리게 했고 선비들이 시를 지었으며, 안평대군이 이를 모아 《석호가정별업도》를 만들었다고 전합니다.
묘는 인천 석남동에 있으며 1990년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문서에는 둘레석을 두른 봉분과 묘비·문인석이 있다고 적혀 있으나, 석물의 크기와 양식 같은 세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인천광역시 석남동 산119-2의 조서강 묘(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호, 1990년 지정, 면적 2,660㎡). 둘레석을 두른 봉분과 조선 초기의 것으로 보이는 묘비·문인석이 있으며 배천조씨 종중이 소유합니다.
조서강은 조반의 아들로 전하며, 조반 계통이 복흥부원군파·숙위공파로 소개됩니다. 다만 조서강 계통이 어느 지파에 속하는지는 자료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인천광역시 석남동에 있으며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