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 아폴로 11호 중계 해설로 아폴로 박사라 불린 인물, 호 고성(孤星)

| 생몰 | 1929 ~ 2010 |
| 시대 | 일제강점기~대한민국 |
| 본관 | 배천 조씨 |
조경철(趙慶哲, 1929년 4월 4일~2010년 3월 6일)은 대한민국의 천문학자로 본관은 백천(배천)이며 호는 고성(孤星)입니다. 평안북도 선천에서 태어나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고 김일성종합대학 광산공학과에 입학했다가 중퇴했습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해 1950년 육군 준위, 이후 소위로 임관했고 금화 603고지 전투에서 공을 세워 금성 화랑무공훈장을 받았으나 총상을 입었습니다. 육군사관학교 물리학 교수로 근무하다 1953년 대위로 예편했고, 1954년 연희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이후 미국에서 공부해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1959년 천문학 석사, 1962년 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 해군천문대 천문학자(1962~1965), NASA 고다드 우주센터 연구원(1965~1967), 메릴랜드대학 교수(1967~1969)를 지냈습니다. 1968년 정부의 해외 유치 과학자 제1호로 귀국했고, 1969년 아폴로 11호 달 착륙 중계방송에서 통역과 해설을 맡아 암스트롱이 달에 내리는 순간 흥분해 의자가 뒤로 넘어간 장면으로 화제가 되어 '아폴로 박사'라는 애칭을 얻었습니다.
국내에서는 1969~1972년 한국과학기술정보센터 초대 사무총장, 1969~1979년 연세대 천문기상학과 교수, 1971~1974년 한국천문학회 회장을 지냈고 1979년 경희대학교로 옮겨 1985년 우주과학과 신설에 관여했습니다. 1984년 한국우주과학회 초대 회장이었고, 1994~1996년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회장도 지냈습니다. 《현대천문학》(1989, 한국출판문화상 대상), 《대우주》, 뉴턴 《프린키피아》 번역 등 저술이 많으며(권수는 출처마다 173권 또는 177권으로 다릅니다), 사후 2010년 과학기술훈장 창조장이 추서되었고 2014년 강원도 화천 광덕산에 조경철 천문대가 세워졌습니다. 정치 활동으로는 1978·1981년 총선에 출마해 낙선하고 1990년대에 새정치국민회의 등에서 활동했습니다.
한국전쟁 때 금화 603고지 전투에서 공을 세워 금성 화랑무공훈장을 받았고, 이후 육군사관학교 물리학 교수를 지냈습니다. 연희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천문학 박사(1962)를 받았습니다.
1969년 아폴로 11호 달 착륙 생중계에서 통역과 해설을 맡아 큰 인기를 얻었고, 흥분해 의자가 뒤로 넘어간 장면으로 화제가 되어 '아폴로 박사'라는 애칭을 얻었습니다.
국립천문대 설치위원회 민간위원으로 1967년 설치 계획안을 마련했고(국립천문대는 1974년 발족), 한국천문학회·한국우주과학회·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의 회장을 지냈습니다. 연세대와 경희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2010년 과학기술훈장 창조장이 추서되었고, 2014년 강원도 화천 광덕산에 유품과 저서를 전시한 화천 조경철 천문대가 건립되었습니다. 조영식이 총장을 지낸 경희대학교에서 교수·부총장으로 일한 인연도 있습니다(조영식 참조).
묘소의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2010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별세했고 5일장 사회장으로 치러졌습니다.
배우자는 영화배우 전계현이며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고 합니다.
1969년 아폴로 11호 달 착륙 중계방송에서 통역과 해설을 맡아 화제가 되면서 붙은 애칭입니다.
위키백과에는 백천(배천 조씨)으로 적혀 있습니다. 백천은 배천을 한자음대로 읽은 표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