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명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해 영해부사를 지내고 조부의 관작 회복을 상소한 문신

| 생몰 | 1577 ~ 1648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장흥 고씨 |
고용후(高用厚, 1577~1648)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장흥이며 의병장 고경명의 여섯째 아들입니다. 광주 제봉종가 연재는 그가 1577년에 태어나 문과에 급제했다고 소개하고, 위키미디어 커먼즈의 자료 설명은 그의 생몰년을 1577~1648로 적고 영해부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형 고종후, 고인후가 임진왜란 중에 순절했을 때 그는 어린 나이였습니다. 훗날 조부 고맹영의 관작을 회복해 달라고 상소하여 1612년 그 뜻이 이루어졌다고 전합니다.
커먼즈에는 은봉 안방준이 영해부사 고용후에게 보낸 친필 서신이 올라 있어, 당대 학자들과의 교유를 짐작하게 합니다. 이 외의 관력과 저술은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