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전라좌도 의병장으로 활약한 의병장, 자는 홍보, 호는 삼도
| 생몰 | 1528 ~ 1597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장흥 임씨 |
임계영(1528~1597)은 조선 중기의 의병장으로 본관은 장흥이며 자는 홍보(弘甫), 호는 삼도(三島)입니다. 1576년 별시문과에 급제해 진보현감을 지냈고, 임기를 마친 뒤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장흥 임씨의 대표적 의병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영문 위키백과도 임계영을 외침에 맞선 인물로 꼽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정사제, 김익복 등과 함께 1,000여 명의 의병을 모았습니다. 남원에서 최경회의 의병과 합류해 전라좌도 의병장이 되었으며, 위키백과는 1592년 7월 20일 보성 관아에서 전라좌의병이 결성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장수, 거창, 합천, 성주, 개령 등지에서 일본군을 격파했고 고성과 거제에서도 일본군을 공격해 전과를 올렸습니다.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부장 장윤에게 의병 300명을 주어 관군을 지원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임계영이 진주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성이 함락되고 장윤이 전사한 뒤였고, 함께 순사하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했다고 전합니다. 화의 이후에는 양주, 정주, 해주, 순창 등지의 목사를 지냈고, 정유재란 때 다시 의병을 일으켰으나 1597년 10월 27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후 병조참판 겸 의금부동지사에 추증되었습니다. 시호, 묘소, 사당 등은 참고한 문서에 없어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592년 7월 20일 보성 관아에서 전라좌의병이 결성되었다고 위키백과가 적습니다. 최경회 의병과의 합류 시기 등은 자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부장 장윤에게 군사를 주어 지원하게 했으나 성이 함락된 뒤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장흥 임씨 문서에서 가문 전체를 보세요.
묘소의 위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