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왕후의 아버지로 문하시중에 오르고 정안공에 봉해진 재상
| 생몰 | 1089 ~ 1156 |
| 시대 | 고려 |
| 본관 | 장흥 임씨 |
임원후(1089~1156)는 고려 인종·의종 때의 재상으로, 아버지는 임의이며 처음 이름은 임원개였다고 합니다. 딸이 인종의 왕비 공예왕후이고, 맏아들은 임극충입니다. 위키백과 문서에 본관이 직접 적혀 있지는 않으나 장흥 임씨 분류에 들어 있고 가족 항목이 장흥 임씨 문서와 이어져 있습니다.
과거에 급제한 뒤 전중내급사, 합천군수, 개성부윤, 예빈시소경, 어사 잡단을 거쳤습니다. 딸이 인종의 왕비가 된 뒤 참지정사로 승진했고 동지추밀원사가 되었습니다. 묘청과 백수한이 대중을 현혹하자 이들을 처단해 화의 싹을 잘라야 한다고 인종에게 상소했으나 답을 얻지 못했으며, 묘청의 난 때는 김부식과 함께 중군수에 임명되었다가 도성에 남아 왕을 호위했습니다. 이 공으로 동덕좌리공신에 책봉되었습니다.
이후 참지정사 판공부사, 중서시랑평장사, 판병부사, 문하시랑평장사, 판이부사를 역임했고, 판이부사 재임 중에는 인사 선발을 공정하게 처리했다고 전합니다. 의종 즉위 후 문하시중이 되어 정안후에 봉해졌으며 조회 때 궁전 위에서 배례하는 특전을 받아 간관들이 지나치다고 비판했습니다. 선충안사좌리동덕공신이 되고 정안공으로 높아졌으며 식읍과 수령부를 받았습니다. 위의 내용은 위키백과에 근거하며, 이자겸과의 관계나 시호는 문서에 나오지 않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묘청과 백수한을 처단하라는 상소를 올렸고, 난이 일어나자 중군수를 맡았다고 합니다. 이 부분은 위키백과 문서를 따랐으며 자세한 전투 경과는 다루지 않습니다.
딸 공예왕후를 통해 의종·명종·신종의 외조부가 되었습니다. 장흥 임씨 문서도 함께 보세요.
묘소의 위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딸이 인종의 왕비 공예왕후이며, 외손자가 의종·명종·신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