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종 대 참지정사·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낸 고려의 재상, 세 아들이 모두 재상
| 생몰 | 1041 ~ 1117 |
| 시대 | 고려 |
| 본관 | 장흥 임씨 |
임의(1041~1117)는 고려의 문신으로 본관은 장흥이며 시호는 정경(貞敬)입니다. 아버지는 상서공부원외랑 임호이고, 아들로 임원숙·임원후·임원준을 두었는데 세 아들 모두 재상에 올랐다고 합니다. 문과에 급제해 관직에 나아갔다고 합니다.
선종이 번저(왕이 되기 전 저택)에 있을 때 주청으로 전첨을 지냈고, 선종 즉위 뒤 우승선이 되었습니다. 1095년 숙종 즉위 후 형부시랑으로 요나라에 가서 즉위를 알렸고, 1099년 좌간의대부, 1100년 상서 자격으로 송나라에 가서 철종의 죽음을 조위했습니다. 1101년에는 송 휘종에게서 『신의보구방』을 받아 귀국했고 어사대부가 되었습니다. 병부상서, 판어사대사를 거쳐 1104년 동지추밀원사가 되었으며, 1105년 추밀원사·이부상서, 예종 즉위 뒤에는 상서좌복야·참지정사에 올랐습니다.
1109년 참지정사로서 윤관, 오연총, 임언 등이 여진 정벌에 실패한 책임을 강하게 비판했고, 같은 해 중서시랑평장사로서 동북면병마사 겸 행영병마사가 되어 함경도 9성을 여진에게 돌려주려 했으나, 이미 군민과 병기를 철수시킨 뒤였다고 합니다. 1110년 수태위·문하시랑평장사로 치사했고 좌리공신이 되었습니다. 인종 때 중서령으로 추증되었습니다. 이처럼 그의 행적은 장흥 임씨가 이후 외척 가문으로 성장하는 배경으로 이해됩니다. 아들 임원후와 손녀 공예왕후를 함께 보세요.
요나라와 송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사실이 한국어 위키백과에 연도별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송 휘종에게서 의서 『신의보구방』을 받아 왔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세 아들이 모두 재상에 올랐고, 손녀 공예왕후가 인종의 왕비가 되어 장흥 임씨는 고려 중기의 중요한 가문으로 꼽힙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들 임원숙·임원후·임원준이 모두 재상에 올랐고, 손녀가 인종의 왕비 공예왕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