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행으로 천거된 학자, 호는 국담, 저서 『인재책』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장흥 임씨 |
임희중(任希重)은 조선 명종 때의 학자로 호는 국담(菊潭)입니다. 위키백과 문서에는 본관이 적혀 있지 않지만 장흥 임씨 분류에 들어 있고, 영문 위키백과의 장흥 임씨 항목도 학교를 세운 학자로 그를 소개합니다. 생몰년과 자, 가계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임억령과 막역한 사이였다고만 전합니다.
명종 때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했으나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았습니다. 여러 차례 학행으로 천거되었고 잠시 좌통례를 지낸 뒤 은퇴했으며, 사후에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고 합니다. 벼슬보다 학문에 전념했고 은퇴 뒤에는 후진 교육과 학문 연구에 힘썼습니다.
저서로는 『인재책(人才策)』이 유명하고 『국담유고』가 있으며, 『국담유고』는 현재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위키백과 문서가 짧은 토막글이어서 자세한 생애는 다른 자료로 확인해야 합니다. 조선 시대 장흥 임씨가 벼슬보다 향촌의 학문과 교육으로 이름을 남긴 사례로 참고할 수 있습니다. 무인으로 활약한 임계영과 달리 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인 인물입니다.
벼슬보다 학문에 전념해 후진 교육에 힘썼다고 합니다. 자세한 활동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국담유고』는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장흥 임씨 문서도 참고하세요.
묘소의 위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