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 대종교 중광(초대 도사교) · 을사오적 처단 시도 · 건국훈장 독립장(1962)

| 생몰 | 1863 ~ 1916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나주 나씨 |
나철(羅喆, 1863~1916)은 대한제국 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대종교를 중광(重光)한 종교 지도자이다. 본관은 나주(羅州), 본명은 나두영(羅斗永)이며 나인영(羅寅永)이라는 이름도 썼다. 호는 홍암(弘巖)이고 전라도 보성 출신이다. 1891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가주서·승문원권지부정자 등을 지냈다.
일본의 침략이 심해지자 관직을 버리고 1904년 호남 지사들과 비밀단체 유신회(維新會)를 조직하였다. 1905년 일본에 건너가 한·일·청 삼국의 동맹과 한국의 독립 보장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일본 정객들에게 전하고 궁성 앞에서 단식하였으며, 을사조약 체결 뒤에는 오기호(吳基鎬) 등과 함께 을사오적 처단을 계획하여 1907년 3월 거사를 시도하였다. 동지들이 붙잡히자 자수하여 10년 유배형을 받았으나 고종의 특사로 그해 풀려났다.
1909년 서울 재동에서 오기호·유근·정훈모 등과 함께 단군대황조신위를 모시고 제천의식을 올린 뒤 단군교를 공표하였는데, 이날이 대종교의 중광절이다. 초대 도사교(都司敎, 교주)에 올라 1910년 교명을 대종교로 바꾸었고, 『신리대전』을 펴내고 만주 화룡현 청파호에 교당을 세우는 등 교세를 넓혔다.
1915년 일제가 종교통제안으로 대종교를 불법화하자, 1916년 음력 8월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 들어가 수도하던 중 일제의 폭정을 통탄하는 유서를 남기고 순국하였다. 대종교는 이날을 가경절로 기린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유언에 따라 만주 화룡현 청파호(靑波湖) 언덕에 안장(현 중국 지린성 허룽시)
장남 나정련(羅正練, 1882~1943)·차남 나정문(羅正紋, 1892~1944) — 두 아들 모두 독립운동가로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