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 북로군정서 참모장(청산리 전투) · 신민부 참모부 위원장 · 건국훈장 독립장(1963)
| 생몰 | 1867 ~ 1928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나주 나씨 |
나중소(羅仲昭, 1867~1928)는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무장투쟁을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나주(羅州), 아명은 봉길(奉吉), 자는 영훈(泳薰), 호는 포석(抛石)이며 '나비장군'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경기도 고양 출신이다. 대한제국 무관학교에서 수학하고 연성학교에서 육군 정위로 복무하였으며, 1907년 군대 해산 뒤 국비유학생으로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유학하였다가 1908년 귀국하였다. 망명 전에는 나영훈(羅泳薰)이라는 이름을 썼다.
1910년 국권을 빼앗기자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9년 서일·김좌진·현천묵·이범석 등과 함께 북로군정서를 조직하고, 왕청현 사관양성소의 교성대장(敎成隊長)을 맡아 독립군을 길러냈다. 1920년 일본군의 대규모 토벌 작전에 맞서 참모장이 되어, 그해 10월 청산리 전투에서 총사령관 김좌진과 함께 큰 승리를 거두는 데 기여하였다.
1920년 겨울 대한독립군단의 일원으로 러시아령에 들어갔다가 김좌진과 함께 북만주 영안으로 돌아와 신민부(新民府)를 조직하고 참모부 위원장을 맡았으며, 목릉현에 성동사관학교를 세워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였다. 1928년 만주에서 세상을 떠났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