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 건국훈장 대통령장, '여자 안중근'

| 생몰 | 1872 ~ 1933 |
| 시대 | 일제강점기 |
| 본관 | 영양 남씨 |
남자현(南慈賢, 1872~1933)은 경북 안동 일직현에서 아버지 남정한과 어머니 진성 이씨 사이의 막내딸로 태어난 여성 독립운동가입니다. 본관은 영양입니다. 1891년 김영주와 혼인했으나 1895년 을미사변 때 남편이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 전사했다고 전하며, 이듬해 유복자 김성삼을 낳아 기르며 시부모를 모셨습니다.
1907년 아버지 남정한의 의병 활동을 도와 장정 소집과 정보 수집을 맡았고,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한 뒤 아들과 함께 만주로 망명했습니다. 서로군정서에 가입해 군자금 모집과 독립운동가 옥바라지를 했고, 동만주에 교회 12곳과 여자교육회 10여 곳을 세워 여성 계몽에도 힘썼습니다. 1924년과 1926년 국내에 들어왔고, 두 번째는 사이토 마코토 총독 암살이 목적이었습니다.
1928년 길림에서 체포된 독립운동가 47명의 석방 운동을 벌여 보석으로 풀려나게 했고, 1932년 국제연맹 리튼 조사단이 하얼빈에 왔을 때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보내 독립 의지를 호소했습니다. 1933년 관동군 사령관 무토 노부요시 암살을 계획했으나 2월 밀고로 체포되었습니다. 옥중 단식 끝에 병보석으로 풀려난 뒤 8월 22일 하얼빈에서 60세로 순국했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의병이던 남편과 아버지의 영향 속에서 일찍 항일 활동에 눈떴고, 3·1 운동 뒤 아들과 함께 만주로 망명해 서로군정서에 가입했습니다.
동만주에 교회와 여자교육회를 세워 여성 계몽에 힘썼고, 군자금 모집과 옥바라지를 맡았습니다. 1928년에는 체포된 독립운동가 47명의 보석 석방을 이끌어 냈습니다.
1932년 리튼 조사단에게 혈서를 보냈고, 1933년 무토 노부요시 암살을 꾀하다 체포되어 병보석 직후 순국했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습니다.
묘소 정보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들 김성삼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