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동메달리스트, 호는 호회

| 생몰 | 1912 ~ 2001 |
| 시대 | 일제강점기·현대 |
| 본관 | 영양 남씨 |
남승룡(南昇龍, 1912~2001)은 전남 순천 출신의 마라토너로 본관은 영양, 호는 호회(湖淮)입니다. 순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양정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다가 중퇴한 뒤 1927년 일본으로 유학해 도쿄 아사부 상업중학교를 마쳤고, 메이지대학 철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32년 전일본마라톤선수권에서 우승했고, 1933년 극동 선수권에서도 우승했습니다. 일본건국기념 국제마라톤에서는 1934년과 1935년에 연이어 1위를 했으며,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해 손기정을 앞섰다고 합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 31분 42초로 동메달을 땄습니다. 당시 일본 대표로 출전해 일본식 이름을 써야 했던 시대적 아픔이 있었고, 이 대회에서 손기정이 금메달을 땄습니다. 광복 뒤인 1947년 보스턴 마라톤에는 서윤복·손기정 등과 함께했고 자신은 12위(2시간 40분 10초)를 기록했습니다. 이후 대한육상경기연맹 이사와 전남대학교 교수를 지냈고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습니다. 2023년 영화 《1947 보스톤》에서 배우 배성우가 그를 연기했습니다.
1936년 올림픽 선발전에서 손기정을 제치고 1위를 했다고 전하며, 본 대회에서는 손기정이 금메달, 남승룡이 동메달을 땄습니다. 일본 대표로 출전해야 했던 시대적 한계 속의 기록이었습니다.
광복 뒤 1947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서윤복이 우승할 때 같은 대회에 참가했고, 자신은 12위를 기록했습니다. 대회 뒤 경교장에서 손기정·서윤복·김구와 함께 찍은 기념사진이 남아 있습니다.
선수 생활 뒤 대한육상경기연맹 이사, 전남대학교 교수로 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