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천문·풍수에 밝았다고 전하는 학자, 호는 격암
| 생몰 | 1509 ~ 1571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영양 남씨 |
남사고(南師古, 1509~1571)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본관은 영양입니다. 호는 격암(格庵)이며, 자는 경원(景元) 또는 경초(景初)로 전합니다. 이조 좌랑 남희백의 아들로 울진 수곡리에서 태어났고, 만호공파 파조 남호의 증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려서는 유학에 힘썼고 중년에는 역학·천문·지리에 통달했다고 전합니다. 평생 『소학』을 곁에 두고 실천했다고 하며, 1564년(명종 19) 효렴으로 천거되어 사직서 참봉에 임명되었고 말년에는 관상감 교수를 지냈습니다. 사후 1709년 울진의 향사에 배향되었고 후세에 '해동강절'로 불렸다고 합니다.
그의 이름으로 전하는 『격암유록』은 1977년에 공개된 책으로, 위키백과는 역사학계에서 검토할 가치가 없는 위서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남사고비결』 등도 18세기 이후 『정감록』을 통해 알려진 것이어서 그의 저작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아버지 묘소 이장에 얽힌 '구천십장' 이야기도 설화입니다. 영양 남씨 소개는 영양 남씨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남사고는 유학에서 출발해 역학·천문·지리로 폭을 넓혔다고 전합니다. 명종 때 효렴으로 추천되어 참봉이 되었고 관상감 교수까지 지냈습니다. 호 '격암'은 『대학』의 격물치지에서 깨달은 바가 있어 붙였다고 합니다.
『격암유록』은 1977년 2월 공개된 문헌으로, 역사학계는 이를 남사고의 저작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그의 예언을 전하는 이야기는 흥미롭지만 사실과 설화를 구별해 읽는 것이 좋습니다.
울진신문은 울진 죽변면 화성1리의 상현사에 입향조(남영번), 해운 남계명과 함께 격암 남사고가 배향되어 있다고 소개합니다. 1709년에는 울진 향사에 배향되었습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울진 근남면 수곡리가 출생지이며, 죽변면 화성리의 상현사에 입향조 등과 함께 배향되었다고 소개됩니다.
만호공파 출신으로 울진 일대 영양 남씨의 대표 인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