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남씨의 시조로 전해지는 당나라 출신 사신, 본래 성명은 김충, 시호는 영의공
| 생몰 | 712 ~ 782 |
| 시대 | 통일신라(전승) |
| 본관 | 영양 남씨 |
남민(南敏)은 영양 남씨의 시조로 받들어지는 인물입니다. 본래 당나라 사람 김충(金忠)이었다고 전하며, 위키백과는 712년 당나라 여남에서 태어나 782년 신라에서 사망한 것으로 적고 있으나, 이 연대는 전승에 기대는 것이어서 자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시호는 영의공(英毅公)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당나라의 봉명사신으로 일본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풍랑을 만나 지금의 경북 영덕 축산(죽도) 부근에 표착했고, 그대로 신라에 귀화했습니다. 대종회 자료는 이 일을 신라 경덕왕 14년(755)으로 전합니다. 경덕왕은 그가 여남에서 왔다 하여 '남(南)'씨 성을 내리고 이름을 민(敏)으로 고쳐 주었으며, 영양현을 식읍으로 주었다고 합니다.
맏아들 김석중은 남씨 성을 받기 전에 태어나 김씨를 그대로 써 영양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합니다. 후손 가운데 홍보·군보·광보 세 형제가 고려 때 각각 영양·의령·고성 남씨의 갈래를 열었다는 전승이 있어, 영양·의령·고성 남씨는 남민을 공동 시조로 삼습니다. 이 모든 내용은 전승이므로 '전한다'로 읽어야 하며, 영양 남씨 소개는 영양 남씨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남민은 당나라 사신으로 일본에 갔다 돌아오던 길에 풍랑으로 영덕 축산 일대에 닿아 신라에 귀화했다고 전합니다. 경덕왕이 '여남의 남'을 따서 남씨 성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맏아들 김석중은 남씨 성을 받기 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김씨 성을 지켜 영양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합니다. 한 가문에서 성과 본관이 갈린 보기 드문 전승입니다.
고려 충렬왕 때 남홍보·남군보·남광보 형제가 세 갈래를 열었다고 전합니다. 홍보는 영양, 군보의 후손은 의령, 광보는 고성 남씨의 1세조로 받들며, 세대 기록에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의령 남씨는 의령 남씨 페이지를 참고하세요.
영양군 영양읍 동부리의 일월산 부용봉 아래에 묘역이 있다고 전하며, 음력 10월 10일(또는 가을 추향제)에 제향을 올린다고 소개됩니다. 일정은 대종회에 확인하세요.
후손이 영양·의령·고성 남씨로 이어지고, 맏아들 김석중은 영양 김씨로 이어졌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