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공파의 파조, 영해 인량리에 터를 잡은 입향조
| 생몰 | 1395 ~ 1477 |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영양 남씨 |
남수(南須, 1395~1477)는 영양 남씨 송정공파의 파조입니다. 중랑장공 남영번의 넷째 아들로, 형 호·이·령과 함께 만호공파·현감공파·반송공파·송정공파의 네 파조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호는 송정(松亭)으로 불립니다.
대종회 자료는 그를 세종 때 사헌부 감찰을 지낸 인물로 소개하고, 대구역사문화대전은 용담 현령을 지냈으나 계유정난 뒤 낙향해 다시 벼슬하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두 기록의 관직이 서로 다르므로 족보로 확인해야 합니다. 울진에서 영해로 옮겨 정착했다고 하며, 영덕 창수면 인량리의 처인당은 그가 1420년부터 터를 잡고 산 곳에 세워진 별채라고 안내됩니다.
그의 후손은 가장 번성한 파로 알려져, 영해 인량리 일대를 본향으로 하는 송정공파가 되었습니다. 송정공파에서 갈라진 석호공파는 대구 입석에 세거했고, 영덕 축산에는 송정공을 기리는 재실 '화재'와 강당 '육영루'가 있다고 소개됩니다. 영양 남씨 소개는 영양 남씨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남영번의 네 아들이 각각 만호·현감·반송·송정의 파조가 되었다고 하며, 남수는 막내로 송정공파를 열었습니다.
처인당은 영덕군 창수면 인량2길 36에 있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66호로, 송정공의 8세손 남필대가 처음 지었고 뒤에 남달만이 보수했다고 안내됩니다. 한국전쟁 때 정침이 소실되어 지금은 정자와 사당이 남아 있습니다.
송정공파에서 갈라진 석호공파의 남실은 1600년 대구 입석동에 들어왔다고 하며, 후손은 20세기 초까지 이곳에서 집성촌을 이루었습니다. 도시화로 집성촌의 기능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영덕 축산의 화재·육영루 등 송정공을 기리는 시설이 소개되나, 묘소의 위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송정공파는 영해 인량리, 영덕, 청송(운강공파) 등에 세거하며 석호공파를 포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