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관료, 제18대 외무부 장관, 국가안전기획부장, 제18대 국무총리(1985~1987), 호 학천

| 생몰 | 1930 ~ 2019 |
| 시대 | 현대 |
| 본관 | 광주 노씨 |
노신영(盧信永, 1930~2019)은 대한민국의 외교관이자 정치인으로 본관은 광주, 호는 학천(鶴泉)입니다. 1930년 2월 28일 평안남도 강서군 강서면 학천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다섯째로 태어났으나 위의 형 넷이 어려서 세상을 떠나 장남이 되었습니다. 평양 제2공립중학교에 다니던 중 해방을 맞았고 1949년 서울로 월남해 고구마를 팔며 고학했습니다. 역사학을 하고 싶었으나 주위 권유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고, 입학 2주 만에 6·25전쟁이 일어나 학도의용군에 지원했습니다.
군복무 중이던 1953년 2월 임시수도 부산에서 열린 제4회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했으나 규정상 군복무자는 채용될 수 없어, 외국 대학의 입학허가를 받아 유학시험에 합격하면 제대가 가능하다는 방법을 찾아 미국 켄터키 주립대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를 받았습니다(1955). 그해 11월 외무부에 들어가 정무국을 거쳐 조약과장, 문서국장, 아주국장, 주 로스앤젤레스·뉴델리 총영사, 외무부차관, 주 제네바 대사 등을 지냈고, 1980년 9월부터 1982년까지 제18대 외무부장관을 지냈습니다.
1982년 6월 유학성의 뒤를 이어 국가안전기획부장이 되어,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 이래 처음으로 군인이 아닌 관료 출신의 정보기관 수장이 되었습니다. 1985년 2월 국무총리에 임명되어 1985년 5월 16일 제18대 총리로 취임했고, 전두환 정부의 내각을 이끌었습니다.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나 은폐와 범인 축소 조작이 드러나자 여론이 악화되었고, 노신영은 사의를 표명해 1987년 5월 25일 퇴임했습니다. 퇴임 후에는 국정자문위원, 한·미현인회의 한국 측 대표, 고려대 석좌교수, 롯데복지·장학재단 이사장,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을 역임했고 2000년 『노신영 회고록』을 냈습니다. 2019년 10월 21일 서울대학교병원에서 89세로 별세했습니다. 1985년 반기문을 총리 의전비서관으로 발탁했다고 위키백과에 적혀 있습니다.
노신영은 해방 후 월남해 고학으로 대학에 들어갔고 전쟁 중 고등고시에 합격했으나 군복무 규정 때문에 곧바로 임용되지 못해 미국 유학으로 길을 열었습니다. 1955년 외무부에 들어간 뒤 약 27년간 외교관으로 일했고, 총영사와 대사를 거쳐 외무부장관에 올랐습니다. 이 과정은 전쟁과 분단 속에서 월남한 청년이 관료로 성장한 한 전형으로 소개됩니다.
노신영은 제5공화국 내각을 대표하는 인물로 전두환의 신임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와 축소 조작이 드러나자 사의를 표명해 그해 5월 퇴임했습니다. 평가는 외교 전문성을 긍정하는 시각과 군사정권 내각의 책임을 묻는 시각으로 갈립니다. 같은 광주 노씨 노무현, 노재봉과 함께 국무총리·대통령을 낸 계통으로 소개됩니다.
묘소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자녀로 노경수·노철수·노동수·노은경·노혜경이 전합니다(노동수는 2017년 별세). 며느리 홍라영은 홍진기의 딸, 정숙영은 정세영의 딸입니다.
광주 노씨(光州 盧氏)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