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6년 정시문과 장원급제, 대사헌 등을 지낸 문신, 호는 춘헌
| 생몰 | 1647 ~ 1700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동복 오씨 |
오시만(吳始萬, 1647~1700)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동복, 자는 영석(永錫), 호는 춘헌(春軒)입니다. 숙부 오정위(예조판서)의 양자로 입양되었고, 부인은 서인 한준겸의 4대손이었다고 합니다. 1666년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하고 음보로 통덕랑에 올랐습니다.
1676년 정시문과에서 장원으로 급제해 성균관전적·지평·홍문관 수찬·교리·헌납·이조좌랑·승지·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1680년 경신대출척으로 파면되었습니다. 집안이 남인이어서 허영의 옥사에 연루되어 서인의 공격을 받았지만 숙종이 받아들이지 않아 사형은 면했다고 전합니다.
1694년 갑술환국으로 남인이 실각하면서 삭탈관직되어 10여 년간 유배되었다고 하나, 위키백과 기준 1700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므로 유배 기간은 자료와 대조가 필요합니다. 유배지에서도 경학 연구에 힘쓰고 문인을 가르쳤으며 글솜씨가 특히 뛰어났다고 전합니다.
오시만은 위키백과에서 숙부 오정위의 양자로 적혀 있으나 오정위 문서는 그를 '아들'로 소개하고 있어, 양자로서 오정위의 대를 이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676년의 장원 급제는 가문의 자랑이었을 것이며, 이후 홍문관과 승정원, 사헌부를 거친 경력은 문장과 학문으로 인정받는 문신의 전형을 보여 줍니다. 그가 속한 집안의 남인 정치 성향 때문에 환국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는 점은 오정위·오시수 등의 삶과 겹칩니다.
갑술환국 뒤 유배되었으나 경학을 연구하고 문인들을 가르쳤다고 전합니다.
출처: 위키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계통 자료. 족보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묘소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위키백과는 숙부 오정위의 양자로 적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