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재란 때 포로로 끌려가 조총 기술을 익혀 돌아온 인물(호 추재)
동명이인 안내 — 같은 이름의 다른 인물:
박우(朴祐) — 강원도관찰사·대사헌을 지낸 중종대의 문신(육봉)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진원 박씨 |
박우(호 추재)는 진원 박씨 중파 13세로 소개되는 조선 중기의 인물입니다. 같은 이름의 충주 박씨 박우(육봉, 대사헌)와는 다른 사람이므로 구별해 보셔야 합니다. 진원 박씨 쪽 자료는 그가 선조 때 무과에 합격해 선공감 판 겸 첨정을 지냈다고 전합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으나 충절을 굽히지 않았고, 그곳에서 조총을 만드는 정교한 기술을 익혀 약 20년 만인 1617년(광해군 9~10년, 자료에 따라 차이)에 송환되었다고 합니다. 돌아온 뒤에는 새로운 무기의 개발과 제작에 공을 세웠다고 하며, 예조의 유문(諭文)이 내려지고 사후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고 전합니다. 시호는 충렬 또는 충열로 표기가 갈립니다.
이 서술은 주로 진원 박씨 종중 계열 자료와 나무위키에 근거하고 있으며, 실록 등 원전과 교차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포로 생활의 구체적 경위, 한자 이름, 생몰년은 단정하지 않고, 나무위키도 국가 서훈 기록은 없다고 적습니다.
정유재란 때 많은 조선인이 일본으로 끌려갔고, 박우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일본에서 조총 제작 기술을 익혔고, 귀환 뒤 이를 조선의 무기 제작에 활용했다고 전합니다. 이 이야기는 조선이 조총을 받아들이던 시기의 한 단면으로 소개됩니다.
이 항목은 진원 박씨 종중 계열 자료에 기대고 있어 사실로 확정하기에는 이릅니다. 동명이인이 많은 이름이므로 충주 박씨 박우와 혼동하지 마시고, 족보와 원전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닙니다. 진원 박씨 중파 13세로 소개되는 정유재란 포로 출신의 동명이인입니다.
종중 계열 자료와 나무위키에 근거한 서술로, 원전 교차 확인은 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