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정변에 참여한 개화파 정치가, 법부대신, 호는 위산, 시호 익헌

| 생몰 | 1859 ~ 1897 |
| 시대 | 개항기 |
| 본관 | 대구 서씨 |
서광범(1859~1897)은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개화파 정치가로 본관은 대구입니다. 자는 서구(敍九), 호는 위산(緯山), 시호는 익헌이며 미국식 이름은 케네스 서(Kenneth Suh)입니다. 평양 평안감사 사택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지낸 서상익, 증조부는 영의정 서용보입니다. 영조의 정비 정성왕후의 친정아버지 서종제의 7대손으로 전해지며, 박규수·오경석·유홍기 등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1880년 증광문과에 급제해 규장각 대교 등을 지냈고, 1882년 김옥균을 따라 일본을 시찰했으며 1883년 보빙사 민영익의 종사관으로 미국과 유럽을 돌아보았습니다. 1884년 12월 박영효, 홍영식, 서재필 등과 갑신정변에 참여했으나 사흘 만에 실패하여 일본을 거쳐 1885년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이때 국내의 가족이 큰 화를 입었고, 아버지 서상익은 옥에서 숨졌다고 전합니다.
미국에서는 1892년 시민권을 얻어 연방 교육국에서 번역·통역 일을 했습니다. 1894년 일본의 도움으로 귀국해 사면·복권되어 제2차 김홍집 내각에서 법무대신, 이어 학부대신을 지내며 사법제도 근대화를 추진했습니다. 1895년 주미공사로 발령받았으나 아관파천 뒤 해임되었고, 폐병이 악화되어 1897년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07년 복권되고 1910년 익헌의 시호가 내려졌습니다.
박규수 등의 영향으로 개화에 뜻을 두고 김옥균·박영효 등과 개화당을 이루었으며, 1884년 갑신정변에 참여했다가 망명했습니다.
1885년 미국으로 건너가 1892년 시민권을 얻고 교육국에서 일했으며, 1895년 1월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조선 국적을 회복했다고 전합니다.
1894년 말 귀국해 법부대신으로 법관양성소 규정 제정, 사형 방식 개정 등 사법제도 근대화를 추진했습니다. 이 시기 내각은 일본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는 평가가 함께 소개됩니다.
묘소는 경기도 광주에 있다가 1985년 10월 경기도 양주군으로 이장되었다고 전하며, 후취 부인과 합장되어 있습니다. 비석은 1900년 5월에 세워졌고 비문은 호러스 알렌이 지었다고 합니다.
자세한 후손 관계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서재필, 서재창과는 13촌 숙질간으로 소개됩니다.
갑신정변에 참여한 개화파로, 귀국 후 법부대신과 학부대신을 지낸 대구 서씨 인물입니다.
갑신정변 실패 뒤 화를 피하려 광(光)·재(載) 항렬을 병(丙)·정(廷)으로 바꿔 썼다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