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제4대 왕이자 경주(월성) 석씨의 시조, 신라 최초의 석씨 왕
| 생몰 | 미상 ~ 80 |
| 시대 | 신라 초기 |
| 본관 | 경주 석씨 |
석탈해(昔脫解, ?~80)는 신라의 제4대 왕(탈해 이사금, 재위 57~80)이며 경주(월성) 석씨가 시조로 모시는 인물입니다. 신라 왕실은 박씨·석씨·김씨가 번갈아 왕위를 이었는데, 석탈해는 석씨로는 처음 왕위에 올랐습니다. 남해 차차웅의 딸 아효부인과 혼인했고, 유리 이사금의 유언에 따라 57년에 즉위했다고 합니다.
출신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전합니다. 『삼국사기』는 다파나국에서 왕비가 낳은 큰 알을 궤에 담아 바다에 띄웠고, 그 궤가 진한의 아진포에 닿아 한 노파가 거두었다고 적습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는 용성국 출신으로 가야에 먼저 도착해 김수로와 왕위를 다투었다고 전합니다. 출생 연도도 기원전 19년 또는 기원전 5년 등 자료마다 달라 분명하지 않습니다.
재위 중인 58년 호공을 대보로 삼았고, 65년 시림에서 김알지를 얻어 시림을 계림으로 고쳤다고 합니다. 80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능은 경주시 동천동의 탈해왕릉으로 전해집니다. 석씨 왕은 모두 8명으로 합쳐 171년 동안 재위했다고 정리됩니다.
탈해의 출생은 신화에 가깝습니다. 『삼국사기』는 다파나국 왕비가 큰 알을 낳자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궤에 넣어 바다에 띄웠다고 합니다. 궤는 가락국 바닷가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진한의 아진포에 닿아 한 노파가 거두었다고 전합니다. 『삼국유사』에는 용성국에서 왔다는 이야기와, 가야에 먼저 닿아 김수로왕과 왕위를 겨루었다는 이야기가 함께 실려 있습니다. 이 때문에 김수로왕 설화와 이어서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출신지를 두고는 함경도·연해주·우산국, 심지어 인도 타밀 지방까지 거론하는 학설이 있고, 중국 사서에 근거해 백제에서 건너왔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어느 쪽도 확정된 것은 아니므로 설화와 학설을 구분해 읽는 것이 좋습니다.
유리 이사금의 유언에 따라 57년 음력 11월에 즉위했다고 합니다. 58년에는 호공을 대보로 삼았는데, 호공은 월성의 주인이었고 탈해가 그에게서 월성을 차지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65년에는 시림에서 금궤 속 아이를 얻어 이름을 김알지라 하고 시림을 계림으로 고쳤다고 합니다. 김알지는 훗날 경주 김씨와 신라 김씨 왕실의 시조로 모셔지는 인물입니다.
80년 음력 8월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며, 능은 경주 동천동에 전해집니다. 아들 석구추의 아들이 벌휴 이사금이고, 벌휴의 후손에서 내해·조분 등 석씨 왕이 이어졌습니다. 아내 아효부인은 남해 차차웅의 딸 박씨로 전합니다.
경주시 동천동 산17번지의 경주 탈해왕릉(사적 제174호)이 그의 능으로 전해집니다. 높이 약 4.5m, 지름 약 14.3m의 둥근 흙무덤이며 소나무숲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숭신전은 1980년 이 능 앞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손자 벌휴가 제9대 왕에 올랐고, 이후 내해·조분·첨해·유례·기림·흘해까지 석씨 왕이 이어졌습니다. 다만 탈해 이후의 계보는 실전되어, 오늘날의 경주(월성) 석씨는 석탈해의 23대손으로 전하는 고려의 교서랑 석재흥을 중시조(1세조)로 삼아 세계를 잇는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