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와 사단칠정 논쟁을 벌인 성리학자, 문묘에 종사된 동방 18현의 한 사람, 자는 호원, 호는 우계, 시호 문간

| 생몰 | 1535 ~ 1598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창녕 성씨 |
성혼(成渾, 1535~1598)은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로 본관은 창녕이며, 자는 호원(浩原), 호는 우계(牛溪)·묵암(默庵), 시호는 문간(文簡)입니다. 1535년 6월 25일 태어나 1598년 6월 6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는 성리학자 성수침이고 어머니는 파평 윤씨이며, 할아버지는 지중추부사 성세순입니다. 부인은 고령 신씨 신여량의 딸이고, 아들은 성문영·성문준이며, 사위 윤황은 그의 문인이기도 합니다. 외손 윤선거·윤문거·윤원거를 통해 윤증과도 이어집니다.
아버지 성수침과 백인걸에게 배웠고, 조광조에서 성수침을 거쳐 성혼으로 이어지는 학통을 계승했다고 평가받습니다. 초기에는 전생서 참봉 등 여러 벼슬을 받았지만 대부분 사양하고 학문과 후학 양성에 힘썼습니다. 1572년부터 이이와 서신으로 사단칠정과 이기론을 토론했는데, 이황의 이기호발설을 지지하며 이이의 기발이승일도설을 비판했고, 두 사람의 이론을 절충하려는 입장도 보인다고 서술됩니다. 이 토론은 6~7년에 걸쳐 이어진 것으로 자료마다 설명이 다릅니다.
1581년 내섬시 첨정을 사직하고 낙향했다가 1583년 병조참지·이조참의·이조참판을 거쳤고, 1589년 기축옥사 무렵 이조참판으로 기용되었으나 동인을 일망타진하는 데에는 반대했습니다. 임진왜란 중에는 우참찬·대사헌·검찰사를 지냈고 1594년 좌참찬을 거쳐 좌찬성에 올랐습니다. 같은 해 유성룡과 함께 화평론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고, 선조의 노여움을 사 낙향했습니다. 저서로 『우계집』, 『주문지결』, 『위학지방』이 있으며, 서예는 아버지를 이어 온화하면서 힘이 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이이는 '의리를 밝히는 데는 내가 낫지만 실천에서는 성혼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평했다고 전합니다. 숙종 때 이이와 함께 문묘에 종사되었으나 기사환국 때 출향되었다가 갑술환국으로 복향되었습니다. 문인으로 조헌, 정엽, 이귀, 김장생, 김덕령 등이 있습니다.
성혼은 1572년부터 이이와 사단칠정, 이기론을 서신으로 토론했습니다. 이 토론은 이황 학파와 이이 학파의 논점을 가르는 중요한 학술 논쟁으로 꼽힙니다. 성혼의 외증손 윤증은 훗날 소론을 이끈 인물로 소개됩니다.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향양리(위키백과에는 '항양리'로 표기)에 묘가 있으며 경기도 기념물 제59호입니다. 서원으로는 파주의 파산서원, 창녕의 물계서원, 해주의 소현서원, 논산의 죽림서원이 소개됩니다.
아들 성문영·성문준이 있고, 성문준의 아들로 성역·성익·성직이 소개됩니다. 외증손으로 소론의 영수 윤증이 있습니다.
문간(文簡)입니다.
1572년부터 이이와 서신으로 토론했으며, 이황의 이기호발설을 지지했다고 서술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