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론의 영수로 추대된 성리학자, 호는 명재, 시호 문성, 논산 노성에서 후학을 길렀다

| 생몰 | 1629 ~ 1714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파평 윤씨 |
윤증(尹拯, 1629~1714)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본관은 파평, 아버지는 윤선거이며 호는 명재(明齋)입니다. 충남 논산 노성(이성)에 살아 '유봉'이라 불리기도 했고, 송시열·김집·유계·권시 등에게 배운 성리학자로 예론에 정통했다고 합니다.
여러 차례 관직이 내려졌으나 대부분 사양했고, 말년에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여 판중추부사로 옮겨졌습니다.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질 때 소론의 영수로 추대되었습니다. 아버지 윤선거의 묘갈명을 스승 송시열에게 부탁했으나 글 내용을 두고 감정이 상해 사제 사이가 끊어졌고, 이를 송시열의 거처 회덕과 자신의 거처 이성의 이름을 따 '회니시비'라 부릅니다.
저서로 『명재유고』『명재의례문답』『명재유서』가 있습니다. 사후 관작이 추탈되었다가 1722년 복관되었고 1723년 문성(文成)의 시호를 받았습니다.
할아버지 윤황, 아버지 윤선거로 이어지는 논산 노성 파평 윤씨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송시열·김집 등에게 성리학을 배웠고 예론에 밝았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묘갈명을 두고 송시열과 갈라선 '회니시비'는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는 중요한 계기의 하나로 설명됩니다. 윤증은 소론의 영수로 추대되었습니다. 이 다툼은 당쟁의 영향을 크게 받아 사후 관작이 추탈되었다가 1722년 복관되었다고 합니다.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의 명재고택은 그의 호를 딴 이름으로 국가민속문화유산이며, 그가 지었다고 전하나 현존 건물은 후대에 고쳐져 19세기 중엽 양식을 보입니다. 윤증가의 유품은 별도로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고 소개됩니다. 노강서원에는 윤황·윤문거·윤선거와 함께 1723년부터 모셔졌습니다.
묘소의 정확한 위치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논산 노성면의 명재고택(국가민속문화유산)과 노강서원 등에서 기려집니다.
아버지 윤선거, 할아버지 윤황으로 이어지는 논산 노성 파평 윤씨(노종) 문중의 대표 인물입니다. 소정공파로 분류하는 자료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