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장하다 유배된 문신, 호는 팔송, 시호 문정, 논산 노성 파평 윤씨의 중심 인물
| 생몰 | 1572 ~ 1639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파평 윤씨 |
윤황(尹煌, 1572~1639)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파평, 자는 덕요(德耀), 호는 팔송(八松)입니다. 아들로 윤훈거·윤순거·윤상거·윤문거·윤선거·윤민거·윤경거·윤시거를 두었고 손자가 윤증입니다.
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장했는데, 삼전도 항복 뒤 척화론자가 나라를 그르쳤다는 이유로 영동에 유배되었다가 1637년 10월 사면되었습니다. 금산에 머물다 1638년 병든 몸으로 이산(논산 노성)으로 돌아와 선영 아래 집에서 지냈고 1639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정(文正)의 시호를 받았습니다.
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장했으나 삼전도 항복 뒤 책임을 지고 영동에 유배되었다가 1637년 10월 사면되었습니다.
여덟 아들을 두었고 윤순거는 형 윤수의 후사로 출계했습니다. 윤순거가 세웠다고 전하는 종학당(1646)을 비롯해 이 집안은 문중 교육으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노강서원은 1675년 윤황을 추모해 세워졌고 1682년 사액을 받았으며, 윤문거가 추가 배향되고 1723년 윤선거·윤증이 더해져 네 분을 모십니다.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논산 노성에 윤황선생고택(충남 민속문화유산)과 윤황선생재실(충남 문화재자료 제391호)이 있고, 노강서원에서 가장 먼저 제향한 인물입니다.
아들 윤선거, 손자 윤증으로 이어지는 노성 파평 윤씨(노종) 문중의 중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