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평 윤씨 족보·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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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 윤씨(坡平 尹氏) — 고려의 명장 윤관을 중시조로 삼는 윤씨의 대표 본관으로, 시조 윤신달의 파평 용연 설화와 왕비·재상을 낸 명문, 논산 노성 종가(윤증)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구 — 약 713,947명 (2000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파평 윤씨란

고려의 명장 윤관을 중시조로 삼는 윤씨의 대표 본관으로, 시조 윤신달의 파평 용연 설화와 왕비·재상을 낸 명문, 논산 노성 종가(윤증)로 알려져 있습니다. 2000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파평 윤씨 인구는 약 713,947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윤씨라도 본관(파평)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파평 윤씨의 뿌리와 본관

파평 윤씨(坡平 尹氏)는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옛 파평현)을 본관으로 하는 윤씨의 대표 본관입니다. 통계청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약 77만 명(770,932명)으로 집계되어 전체 성씨·본관 가운데 상위권에 드는 큰 집안이고, 2000년 조사에서는 713,947명이었습니다. 윤씨 가운데 가장 크며, 같은 윤씨라도 해평 윤씨·칠원 윤씨 등은 시조가 다른 별개의 본관입니다.

시조 윤신달과 파평 용연의 전설

시조 윤신달(尹莘達)은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에 공을 세운 고려 개국공신으로, 삼한벽상공신에 책록되고 삼중대광 태사에 올랐다고 합니다. 족보와 지역 전승은 그의 출생을 파평산 기슭 용연(龍淵)의 전설로 전합니다. 신라 진성여왕 7년(893) 음력 8월 15일, 구름과 안개가 짙게 끼고 천둥이 치던 용연 위에 금궤(옥함)가 떠올랐고, 윤온이라는 노파가 이를 건져 열자 금빛에 싸인 사내아이가 나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이의 어깨에는 붉은 사마귀가 있었고 양 겨드랑이에는 81개의 비늘 무늬가, 발에는 7개의 검은 점이 있었다고 하며, 이 아이가 윤신달이고 노파의 성을 따라 윤씨가 되었다고 전합니다. 이는 설화이므로 사실과는 구분해 읽는 것이 좋습니다. 용연은 지금도 파주시 파평면 눌로리에 있으며 파주시 향토유적(제10호)으로 보존되고, 파평 윤씨의 발상지로 여겨집니다.

시조의 묘소는 경상북도 포항시 기계면 봉계리 구봉산 아래에 있다고 전합니다. 윤신달이 고려 초 동경(경주) 대도독으로 부임해 임지에서 별세했다는 전승에 따른 것으로, 1752년 묘소를 관리하기 위해 세운 사당 봉강재(奉岡齋)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제20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중시조 윤관과 본관의 유래

본관이 '파평'이 된 데는 중시조 윤관(尹瓘, 1040~1111)이 큰 몫을 합니다. 윤관은 시조의 5세손(4대손)으로,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한 뒤 1107년(예종 2) 원수가 되어 여진을 정벌하고 동북면에 9성을 쌓았습니다. 이 공으로 영평현(파평의 다른 이름) 개국백에 봉해졌고 이후 후손들이 본관을 파평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시호는 문숙(文肅)이며,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에 있는 사적 제323호 '파주 윤관 장군 묘'입니다. 한편 윤관이 적군에 쫓겨 강가에 이르렀을 때 잉어 떼가 다리가 되어 건너게 해 주었다는 전설에서, 파평 윤씨 일부 집안에서는 잉어를 먹지 않는 풍습이 전한다고 합니다.

고려 시대의 가문

윤관의 아들 윤언이(尹彦頤, 1090~1149)는 시호가 문강(文康)이며 《주역》에 밝아 『역해(易解)』를 썼고, 인종 때 묘청의 난 토벌에 참여했으나 김부식과 대립해 좌천된 일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 아들 윤인첨(尹麟瞻, 1110~1176)은 명종 때 조위총의 난을 평정한 공신으로, 윤관-윤언이-윤인첨으로 이어지는 3대의 명신이 고려 중기 이 가문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충선왕 때에는 왕실과 혼인할 수 있는 재상지종(宰相之宗) 15개 가문의 하나로 꼽혔습니다. 고려 말에는 판도판서를 지낸 윤승례, 조선 초 좌명공신에 오른 윤곤 계통이 이어졌습니다.

16개 파와 분관

대종회 정리에 따르면 파평 윤씨는 16대파로 나뉩니다. 남원백파(윤위)·함안백파(윤돈)·덕산군파(윤은형)·문정공파(윤인첨)·신녕군파(윤인직)·대언공파(윤안적)·봉록군파(윤중조)·판서공파(윤리)·야성군파(윤혁)·전의공파(윤승휴)·소정공파(윤곤)·원평군파(윤목)·소도공파(윤향)·판도공파(윤승례)·소부공파(윤암)·태위공파(윤안비)입니다. 이 가운데 소정공파와 판도공파에 파평 윤씨 약 80%가 속한다고 하며, 남원·함안·덕산·신녕은 따로 본관으로 분관한 윤씨가 되었습니다. 파조의 세대는 자료마다 한두 대씩 다르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조선 시대 — 왕비와 재상을 낸 명문

조선에서는 청주 한씨·여흥 민씨와 함께 왕비를 많이 낸 집안으로 꼽혔습니다. 세조의 비 정희왕후(貞熹王后, 1418~1483)는 파평부원군 윤번(尹璠)의 딸로, 예종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둘째 손자 성종을 즉위시키고 1469년부터 1476년까지 조선 최초로 수렴청정을 했습니다.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는 윤호의 딸로 중종의 어머니입니다. 중종의 첫 계비 장경왕후는 윤여필의 딸로 인종을 낳았고, 두 번째 계비 문정왕후는 윤지임의 딸로 명종을 낳았습니다. 자료에 따라 왕비 수를 5명으로 세기도 합니다. 이 밖에 소정공 윤곤의 증손 윤필상은 성종 때 영의정에 올랐고, 정희왕후의 친정 형제 윤사분·윤사흔이 우의정을 지냈으며,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가 347명에 달한다는 집계가 소개됩니다.

대윤과 소윤, 그리고 을사사화

왕비를 낸 집안이 둘로 갈라지면서 비극도 따랐습니다. 장경왕후의 오빠 윤임(1487~1545)은 인종의 외삼촌으로 '대윤'을 이끌었고,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1503~1565)은 명종의 외삼촌으로 '소윤'을 이끌어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맞섰습니다. 인종이 즉위 8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명종이 즉위하자 1545년 을사사화가 일어나 윤임과 아들들이 죽임을 당했고, 이후 윤원형 일파가 권력을 잡았다가 문정왕후 사후 몰락했습니다. 윤임은 선조 때 신원되고 복관되었으며, 아들 윤흥신은 임진왜란 때 다대포 첨사로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같은 가문 안의 이 대립은 판도공파가 외척으로 번성하다 쇠퇴하는 계기로 설명되기도 합니다.

논산 노성의 종가와 소론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일대는 파평 윤씨의 대표적 세거지입니다. 이 가문의 후손 가운데 윤돈이 충남으로 내려오고 이후 윤창세가 노성에 정착하면서 터를 잡았다고 전하며, 흔히 '노성 윤씨' '노종(魯宗)' 집안으로 불립니다(본관이 다른 별개의 성씨가 아니라 파평 윤씨 가운데 노성에 자리 잡은 문중입니다). 여기서 윤황(尹煌, 1572~1639)이 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장하다 영동으로 유배되었고, 그 아들 윤선거(尹宣擧, 1610~1669)는 강화도 함락 때 살아남은 것을 평생 자책하며 벼슬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 아들 윤증(尹拯, 1629~1714)은 호가 명재(明齋)이며, 벼슬을 사양하며 학문과 후학 양성에 힘써 '백의정승'으로 불렸고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질 때 소론의 영수가 되었습니다. 스승 송시열과 아버지 묘갈명 문제로 갈등한 '회니시비'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윤황·윤선거·윤증 3대는 모두 시호를 받았습니다. 소정공파의 윤지선·윤지완 형제도 소론으로 분류되는 재상입니다.

이 집안은 종학당(윤순거가 1646년 세웠다고 소개됨)처럼 문중이 직접 자제를 가르치는 학교를 열어 인재를 길러냈고, 종학당 출신 급제자가 수십 명에 이른다는 소개가 있습니다. 논산 노성에는 명재 윤증의 고택(명재고택), 윤황·윤선거·윤증 등을 모신 노강서원, 윤황선생고택·재실 등이 남아 있습니다.

근현대의 파평 윤씨

일제강점기에는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의거의 윤봉길, 저항시인 윤동주를 비롯해 많은 독립운동가가 나왔습니다. 현대에는 제20대 대통령 윤석열이 같은 본관(파평)이며, 소정공 윤곤의 20대손으로 소개됩니다. 한편 제4대 대통령 윤보선과 문신 윤두수는 해평 윤씨로, 작곡가 윤이상은 칠원 윤씨, 동요 〈반달〉의 윤극영은 해평 윤씨로 알려져 있어 파평 윤씨가 아닙니다.

파조의 세대와 계보는 자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주요 파(派)

문정공파, 소정공파, 판도공파, 남원백파, 함안백파, 정정공파, 덕산군파, 신녕군파

문정공파 (文定公派)

문정공파는 고려 중기의 문신 윤인첨(尹麟瞻, 1110~1176)을 파조로 합니다. 초명은 영첨(英瞻), 자는 태조(胎兆)이고, 정당문학을 지낸 윤언이(尹彦頤)의 아들이자 중시조 윤관(尹瓘)의 손자입니다. 윤관-윤언이-윤인첨으로 이어지는 고려 예종~명종 대의 명신 3대와 닿아 있는 이른 시기의 파로, 대종회는 파조를 시조의 7세손으로 분류합니다.

윤인첨은 시어사·형부시랑·서북면병마사·국자감대사성을 거쳐 지추밀원사·참지정사·중서시랑평장사에 올랐습니다. 1174년 서경유수 조위총(趙位寵)이 반란을 일으키자 원수가 되어 1176년 이를 평정했고, 그 공으로 추충정란광국공신이 되었으나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후 수태사 문하시중에 증직되어 명종 묘정에 배향되었고, 시호는 문정(文定)입니다.

아들 윤종악·윤종함·윤종양 3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했다고 전합니다. 문정공파는 소부공파·태위공파와 함께 별도의 항렬 표를 쓴다고 소개됩니다. 세거지와 집성촌, 문중 단체의 소재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으니 소속 종친회와 족보로 확인하세요.

소정공파 (昭靖公派)

소정공파는 조선 초의 문신 윤곤(尹坤, ?~1422)을 파조로 합니다. 호는 국재(菊齋)·국음(菊陰)이고, 개성부사 윤승순(尹承順)의 아들입니다. 완산부윤·좌군도총제·경주 안동도 병마도절제사를 지냈고, 1401년 제2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태종)을 도운 공으로 좌명공신 3등에 책록되어 파평군(坡平君)에 봉해졌습니다. 이후 의정부 참찬, 평안도관찰사, 이조판서를 지냈으며 시호는 소정(昭靖)입니다.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연풍리에 있으며 경기도 기념물 제10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윤곤의 아들로는 전처 흥양 류씨 소생의 윤희이·윤희제, 후처 청주 한씨 소생의 윤삼산이 전합니다. 윤삼산의 아들 윤호(1424~1496)는 성종의 국구로 영원부원군에 올랐고, 그 딸이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입니다. 윤희제의 손자 윤경의 아들이 성종 때 영의정을 지낸 윤필상(尹弼商, 1427~1504)으로, 갑자사화 때 사사되었다가 중종반정 이후 복권되었다고 합니다.

후기에는 윤지선(尹趾善)이 좌의정, 동생 윤지완(尹趾完, 1635~1718)이 우의정에 올랐으며 윤지완은 1682년 통신사 정사로 일본에 다녀온 소론 재상입니다. 소론의 영수 윤증(尹拯)을 이 계통으로 분류하는 자료도 있고, 후손 일부는 충남 논산 노성에 자리 잡았다고 전합니다. 제20대 대통령 윤석열도 소정공의 20대손으로 소개됩니다. 파평 윤씨의 약 80%가 소정공파와 판도공파에 속한다고 하는 만큼 전국에 널리 퍼져 있으니, 정확한 계통은 족보로 확인하세요.

판도공파 (版圖公派)

판도공파는 고려 말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윤승례(尹承禮)를 파조로 합니다. 윤승례는 시조 윤신달의 13~14세손(자료마다 다름)으로, 소정공파 파조 윤곤의 아버지 윤승순의 아우입니다. 아들 대에 제학공파·부윤공파·정정공파로 갈라졌다고 소개되며, 이 가운데 정정공파가 왕비를 낸 갈래입니다.

윤승례의 후손 윤번(尹璠, 1384~1448)은 영의정에 추증되고 파평부원군에 추봉되었으며 시호는 정정(貞靖)입니다. 그의 일곱째 딸이 세조비 정희왕후(1418~1483)로, 정희왕후는 성종 즉위 후 1469년부터 1476년까지 조선 최초로 수렴청정을 했고 능은 남양주 광릉에 있습니다. 윤번의 아들 윤사분·윤사흔은 모두 우의정에 올랐습니다.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와 문정왕후도 이 계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장경왕후는 윤번의 둘째 아들 윤사윤의 후손으로 정리되는 것으로 보이며, 오빠가 윤임(尹任)입니다. 문정왕후는 윤지임의 딸이고 동생이 윤원형(尹元衡)입니다.

그러나 대윤(윤임)과 소윤(윤원형)의 외척 다툼은 1545년 을사사화로 이어져 윤임과 아들들이 죽임을 당했고, 이 일을 판도공파가 쇠퇴한 계기로 설명하는 자료도 있습니다. 윤임의 아들 윤흥신은 임진왜란 때 다대포 첨사로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독립운동가 윤봉길은 판도공의 32세손으로 소개됩니다. 세거지는 경기 파주를 중심으로 전국에 걸쳐 있어 한 곳으로 정하기 어려우니 족보로 확인하세요.

남원백파 (南原伯派)

남원백파는 윤위(尹威)를 파조로 합니다. 윤위는 시조 윤신달의 7~8세손(자료마다 다름)이자 윤관의 증손으로 전해지며, 1176년(명종 6) 문과에 급제한 뒤 국자박사·기거랑·이부낭중·예빈소경 등을 지냈습니다.

1200년(신종 3) 전라도에 갔을 때 남원에서 일어난 반란을 평정한 공으로 남원백(南原伯)에 봉해졌다고 하며, 그 후손들은 남원을 본관으로 하는 남원 윤씨로 분관했습니다. 이후 대종회는 남원백파를 파평 윤씨의 한 파로 합본해 정리하지만,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남원 윤씨가 별도 본관으로 집계됩니다.

남원 윤씨로는 효종~숙종 때 남인의 거두였던 윤휴(尹鑴) 등이 소개됩니다. 남원 윤씨와 파평 윤씨 남원백파의 관계는 족보에 따라 합본·분리가 달라질 수 있으니, 본인 족보가 어느 쪽인지 확인하세요. 세거지는 전북 남원을 비롯한 전라 지역과 전국에 퍼져 있다고 하나 구체적 집성촌은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함안백파 (咸安伯派)

함안백파는 남원백 윤위의 손자 윤돈(尹敦)을 파조로 합니다. 대종회 정리로는 시조의 10세손으로 소개되며, 윤돈은 고려 원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이부시랑에 올랐고, 함안에서 일어난 난을 평정한 공으로 함안백(咸安伯)에 봉해지고 함안을 식읍으로 받았다고 전합니다.

아들 윤희보(尹希甫)가 함안에 정착했으며, 후손들은 함안 윤씨로 분관했습니다. 파평 윤씨 대종회는 함안백파도 파평 윤씨의 한 파로 정리하지만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함안 윤씨가 별도 본관으로 집계됩니다.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가 함안 윤씨 계통으로 소개되는 자료도 있어, 파평 윤씨가 배출한 왕비 수를 5명으로 세는 집계의 배경으로 짐작되지만 이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세거지는 경남 함안을 비롯해 영남 일대에 퍼져 있다고 하며, 구체적인 집성촌과 종친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 파의 후손이라면 족보가 파평 윤씨 쪽인지 함안 윤씨 쪽인지 먼저 확인해 보세요.

정정공파 (貞靖公派)

정정공파는 판도공 윤승례의 후손 가운데 시호가 정정(貞靖)인 윤번(尹璠, 1384~1448)을 파조로 하는 계통입니다. 판도공파가 아들 대에 제학공파·부윤공파·정정공파로 갈라졌다고 소개되는 자료가 있습니다.

윤번은 영의정에 추증되고 파평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딸 정희왕후는 세조의 왕비로 1469~1476년 조선 최초로 수렴청정을 했고, 아들 윤사분·윤사흔은 우의정에 올랐습니다.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와 그 오빠 윤임도 이 계통으로 정리됩니다. 정정공파에서 왕비 2명이 나왔다는 설명도 있으나 계보 해석이 자료마다 달라 족보로 확인하세요.

덕산군파 (德山君派)

덕산군파는 윤은형을 파조로 하는 파평 윤씨의 한 파입니다. 대종회 정리에서 파조는 시조의 9세손으로 소개되며, 후손들은 덕산을 본관으로 하는 덕산 윤씨로 분관했다고 합니다.

파조의 관력과 세거지, 대표 후손은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덕산 윤씨와 파평 윤씨의 합본·분리는 족보마다 다를 수 있으니, 본인 집안의 족보와 종친회에서 확인하세요.

신녕군파 (新寧君派)

신녕군파는 윤인직을 파조로 하는 파평 윤씨의 한 파입니다. 대종회 정리에서 파조는 시조의 8세손으로 소개되며, 후손들은 신녕(경북 영천)을 본관으로 하는 신녕 윤씨로 분관했다고 합니다.

파조의 관력과 세거지, 대표 후손은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신녕 윤씨와 파평 윤씨의 합본·분리는 족보마다 다를 수 있으니, 본인 집안의 족보와 종친회에서 확인하세요.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대표 인물

윤신달(파평 윤씨 시조), 윤관(고려 명장), 윤필상(성종 때 영의정), 윤임(대윤의 중심), 윤원형(소윤의 중심), 윤황(병자호란 척화론), 윤선거(학자), 윤증(소론의 영수), 윤봉길(독립운동가), 윤동주(시인), 윤석열(제20대 대통령)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파평 윤씨 독립유공자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공공데이터)를 참고한 파평 윤씨 계열 독립유공자입니다. 이름을 누르면 공적을 볼 수 있습니다.

윤봉길 (1908~1932)상하이 훙커우 의거를 결행한 독립운동가윤동주 (1917~1945)일제강점기의 시인,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저자윤응선 (1853~1925)독립유공자 · 의병 · 건국포장(2015)윤자형 (1868~1939)독립유공자 · 의병 · 애국장(1990)윤동욱 (1891~1968)독립유공자 · 3·1운동 · 대통령표창(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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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 윤씨 친일 인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결정 명단·《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등에 오른 파평 윤씨 계열 인물입니다.

윤필오 (1860~1924)정치·종교 (친일반민족행위자)윤명선 (1900~1946)정치·해외 (친일반민족행위자)

세거지와 집성촌

파평 윤씨는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파평면 일대를 비롯해 남양주 화도읍 월산리, 용인 기흥구 구성동, 논산 노성면, 세종 연서면·장군면, 청주 미원면, 보은 탄부면, 함평 해보면, 구미·예천, 대구 달성군 옥포읍 등 전국에 집성촌이 있고, 황해도 일부 지역에도 있었다고 소개됩니다. 충청권과 경상권에 분포 밀도가 높습니다. 어느 파가 어느 마을에 모여 사는지는 파마다 다르니 족보로 확인하세요.

유적과 문화유산

파평산 기슭의 파평 용연(파주시 향토유적 제10호), 파주시 광탄면의 윤관 장군 묘(사적 제323호), 포항시 기계면 봉계리의 시조 묘소와 봉강재(경북 문화재자료 제201호), 소정공 윤곤 묘(경기도 기념물 제106호), 논산 노성면의 명재고택(1984년 지정, 국가민속문화유산)과 노강서원(1675년 창건, 국가 사적), 윤황선생재실(충남 문화재자료 제391호), 창녕 죽림재(경남 문화재자료)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 가운데 명재고택은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를 이루고 앞마당에 네모난 못(방지)을 둔 구조이며, 현존 건물은 19세기 중엽 양식으로 후대에 고쳐진 것으로 보입니다. 지정 번호·명칭은 개편된 적이 있으니 국가유산포털에서 확인하세요.

종친회와 항렬

종친회는 파평윤씨대종회를 중심으로 전국 지역별·파별 종친회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대종회 공식 홈페이지 주소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으니, 포털에서 '파평윤씨대종회'를 검색해 공식 안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항렬자는 파와 계통마다 달라서(문정공파·소부공파·태위공파는 별도 항렬표를 쓴다고 합니다), 정확한 항렬표는 우리 파 종친회와 족보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인구와 분포

2015년 조사에서 약 770,932명으로, 2000년 조사의 713,947명에서 늘었습니다. 윤관의 후손에서 수십 파로 갈라졌지만 오늘날 소정공파와 판도공파에 약 80%가 속하고, 남원백파·함안백파 등은 별도의 본관(남원·함안 윤씨)으로도 집계됩니다.

우리 파평 윤씨 가계도, 이렇게 만드세요

  1. 나부터 등록 — 로그인하면 나만의 트리가 생깁니다. 본인 이름·생년·본관(파평)을 입력합니다.
  2. 윗대 올리기 — 부모·조부모를 추가합니다. 정확한 확인은 제적등본으로 조상 찾기를 참고하세요(보통 5대까지).
  3. 형제·자녀 연결 — 항렬(돌림자) 순으로 정렬하면 세대가 한눈에 정리됩니다.
  4. PDF·공유 — 완성한 가계도를 PDF로 저장하고 가족을 초대해 함께 관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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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평 윤씨 시조 계보도

파평 윤씨 시조 계보도윤신달 → 윤관 → 윤언이 · 정희·정현·장경·문정왕후
공개된 사료로 확인되는 파평 윤씨 윗대 계보를 실제 족보트리로 그렸습니다. 인물을 누르면 그 분부터 위쪽 계보를 내 족보 맨 위로 가져올 수 있어요(요금제 인물 수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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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 윤씨 종친회

파평 윤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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