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희수 沈喜壽

선조·광해군 때 좌의정, 청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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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548 ~ 1622
시대조선 중기
본관청송 심씨

생애 약력

심희수(沈喜壽, 1548~1622)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송, 자는 백구(伯懼), 호는 일송(一松)·수뢰루인(水雷累人), 시호는 문정(文貞)입니다. 장령 심순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동지돈녕부사 심봉원(沈逢源), 아버지는 승문원 정자 심건(沈鍵)입니다. 영의정 심연원과 좌의정 심통원에게는 종손자가 되며, 노수신의 문인입니다.

1570년(선조 3) 진사시에 합격해 성균관에 들어갔고, 이해 이황이 세상을 떠나자 성균관을 대표해 장례에 참여했습니다. 1572년 별시문과에 급제하고 1583년 호당에 뽑혀 사가독서했습니다. 1589년 헌납으로서 정여립 옥사가 확대되는 것을 막으려 했고, 1591년에는 선위사로 동래에서 일본 사신을 맞았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의주까지 선조를 호종하며 도승지에 오르고 대사헌이 되었는데, 중국어에 능해 명나라 사신을 응접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형조·호조판서를 지내며 명나라 경략 송응창의 접반사로 오래 서도(西道)에 머물렀고, 그를 설득해 관서 지방의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는 데 힘썼습니다. 1599년 이조판서로 홍문관·예문관 대제학을 겸했고, 좌·우찬성을 거쳐 우의정에 올랐으며 청백리에 뽑혔습니다. 1606년 좌의정이 되었고, 이듬해 선조가 생부 덕흥대원군을 추숭하려 하자 예법에 어긋난다며 막았습니다.

광해군 즉위 뒤에도 정승을 지냈으나, 이이첨 등이 임해군을 극형에 처하려 하자 그 부당함을 말했고, 1613년 계축옥사 때에는 이항복·이덕형 등과 함께 영창대군을 해치려는 데 반대했습니다. 이듬해에는 영창대군의 처형을 비판하다 광해군의 노여움을 산 정온을 변호해 귀양에 그치게 했습니다. 1615년 허균과 종계 문제로 다투다 조정에서 밀려났고, 폐모론이 일자 둔지산에 은거해 『주역』을 읽으며 지조를 지켰습니다.

대종회 자료에는 정승을 지내면서도 허물어져 가는 집 한 채뿐이어서 임금이 말 한 마리를 내려 집을 고치게 했다는 일화가 전하며, 임방의 『천예록』에는 젊은 시절 기생 일타홍과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저서로 『일송집』이 있고, 상주 봉암사(鳳巖祠)에 제향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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