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고등농업학교 졸업 무렵 식민지 교육에 항거해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이자 서예가·시인, 1993년 건국포장 추서
| 생몰 | 1912 ~ 1969 |
| 시대 | 일제강점기·현대 |
| 본관 | 아주 신씨 |
신찬익(申璨翊, 1912~1969)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서예가·시인으로 본관은 아주입니다. 아명은 신아(申阿)였고 1915년 신찬익으로 개명했으며, 호는 삼도(三徒)입니다. 1912년 8월 1일 제주에서 태어나 유아기와 유년기를 전남 신안 압해도와 해남에서 잠시 보낸 뒤 1918년 제주로 돌아와 성장했습니다. 1925년 제주 신성보통학교를 졸업했고 1931년 제주고등농업학교를 졸업했습니다.
1931년 졸업 당시 사상이 불순하다는 이유로 졸업 직전 퇴학 조치된 동급생 김원요가 학교에 항의하다 졸업식장에서 일본 경찰에 붙잡히고, 같은 이유로 다른 동급생들이 유급되자 동료 졸업생들과 함께 식민지 교육 철폐를 주장하는 격문을 뿌리고 교무실과 일본인 교장 관사로 몰려가 항의하는 시위를 주도했습니다. 이 일로 다른 학생 10명과 함께 붙잡혀 같은 해 8월 29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고, 1932년 3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5년으로 확정되어 1년여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광복 후에는 1947년 2월부터 1948년 2월까지 한국독립당 초급행정위원을 지내다 탈당했고, 1948년 해남중학교에서 명예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1955년 제주로 영구 귀향했고 1961년 12월부터 1962년 2월까지 제주도지사의 민원행정비서관을 지냈습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3년 3월 1일 건국포장을 추서했습니다.
사건은 졸업식 당일 이미 동급생이 연행되고 다른 이들이 유급되면서 학생들의 분노가 커진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신찬익은 격문을 뿌리고 교무실과 교장 관사로 가 항의하는 시위를 주도해 징역 1년과 집행유예 5년을 받았습니다.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공훈록에 그의 공적이 기록되어 있고, 1993년 3월 1일 건국포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서예가·시인으로서의 활동은 위키백과에 소개되나 구체적인 작품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묘소의 위치는 확인한 자료에 나오지 않습니다.
가족 사항은 다루지 않습니다.
예. 1993년 3월 1일 건국포장이 추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