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무》로 알려진 민중 시인, 2001년 은관문화훈장 수훈, 동국대학교 석좌교수

| 생몰 | 1936 ~ 2024 |
| 시대 | 현대 |
| 본관 | 아주 신씨 |
신경림(申庚林, 1936~2024)은 대한민국의 시인으로 본관은 아주입니다. 1936년 4월 6일 충청북도 충주(당시 중원군)에서 태어나 충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마쳤습니다. 1956년 《문학예술》에 〈갈대〉〈낮달〉〈석상〉이 추천되어 문단에 나왔습니다.
건강이 나빠 고향에 내려가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기도 했고, 서울로 돌아와 잡지사와 출판사에서 일하며 약 10년 동안 시를 쓰지 않았습니다. 1965년부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해 〈원격지〉〈산읍기행〉〈시제〉 등을 발표했고, 1971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농무〉〈전야〉〈서울로 가는 길〉을 내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재출발 이후의 시는 시골의 흙냄새와 생활의 땀, 한과 의지가 짙게 배어 '민중 시인'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농민문학과 민중문학을 주제로 한 평론도 발표했습니다.
《농무》(1973)를 비롯해 《새재》《달 넘세》《남한강》《가난한 사랑노래》《길》《쓰러진 자의 꿈》《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목계장터》《뿔》《낙타》 등의 시집과 《신경림 시전집》, 동시집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산문집 《바람의 풍경》, 평론집 《민중과 문학》을 남겼습니다. 2001년 은관문화훈장(2등급)을 받았고, 2024년 5월 22일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956년 등단 뒤 건강 악화와 생계 문제로 시를 쓰지 못하다가 1965년 다시 붓을 들었습니다. 이때의 침묵이 오히려 농촌과 장터의 삶을 가까이서 보게 한 시간이었다는 평이 있습니다.
국군보안사령부의 사찰 대상 중 한 사람이었고, 이는 1990년 10월 보안사 민간인 사찰 사실을 폭로한 윤석양 이병의 증언으로 알려졌습니다. 민중 문학을 이끈 문인으로서 당시 정부의 감시를 받았다는 점이 위키백과에 소개됩니다.
묘소의 위치는 확인한 자료에 나오지 않습니다.
가족 사항은 다루지 않습니다.
위키백과는 본관을 아주(鵝洲)로 적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