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익 申之益

효행으로 정려를 받아 청주 삼효각의 주인이 된 학자, 호 양일당, 검암서원 배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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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588 ~ 1649
시대조선 중기
본관아주 신씨

생애 약력

신지익(申之益, 1588~1649)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본관은 아주, 자는 순거(舜擧), 호는 양일당(養一堂)입니다. 승지를 지낸 오재 신지제의 종제로 학행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지극히 모셨습니다.

어머니의 병환에는 목욕재계하고 북두칠성에 빌었으며,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했다고 합니다. 상을 당해서는 소리 내어 울다 혼절하기도 했고 상복을 벗지 않고 상례를 치르는 등 효행이 높았습니다. 이 효행으로 사촌 신협, 아들 신심과 함께 충북 청원군 미원면 가양리 솔골의 삼효각에 1703년(숙종 29) 정려되었습니다.

손자 신응태(신응태)는 송시열의 문인으로 학문이 뛰어났고, 송시열이 신지익의 행장을 지었으며 그의 일이 《삼강록》에 실렸다고 합니다. 청주의 검암서원에 배향되었고, 삼효각은 2015년 청주시 향토유적 제15호가 되었습니다. 삼효각 안내문에는 아들의 이름이 '신첨심'으로 적혀 있어 문헌에 따라 표기가 다릅니다.

삼효각

삼효각은 신협·신지익과 신지익의 아들 신심의 효행을 기려 세운 정려각입니다.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에 있고 2015년 4월 17일 청주시 향토유적 제1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검암서원 배향

검암서원은 1694년 조헌을 주향으로 창건했으며, 한일휴·지여해·신지익 등을 배향했다고 전합니다. 1871년 철폐되었다가 1958년 유림이 다시 세워 신응태를 추향했습니다.

집안과 인물

종형 신지제는 승지를 지내 오재(梧齋)로 불렸고, 의성 지역 향토문화전자대전은 신지제를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과 호종원종공신에 책록된 인물로 소개합니다. 효행으로 함께 정려된 사촌 신협과 아들 신심, 이후 학문으로 이름난 손자 신응태까지 3대가 이어졌다는 점이 청주 아주 신씨의 특징입니다.

묘소

묘소의 위치는 확인한 자료에 나오지 않습니다. 청주시 상당구에 삼효각과 검암서원이 있습니다.

후손

아들 신심, 손자 신응태가 학문과 효행으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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