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흘 申仡

임진왜란 때 의병에 참여하고 《난중사적》을 편찬한 의성의 문인, 호 성은, 사후 좌승지 추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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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550 ~ 1614
시대조선 중기
본관아주 신씨

생애 약력

신흘(申仡, 1550~1614)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본관은 아주, 자는 구지(懼之), 호는 성은(城隱)입니다. 1550년 9월 9일 의성향교 앞마을에서 이황의 문인 신원록(신원록)과 벽진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는 신수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어머니를 모시고 황학산으로 피란했다가 형 신심을 도와 의병을 일으켜 수백 명을 모았고, 김해·류종개·정세아 등과 일직현 정자에서 모여 좌우위로 나뉘어 있던 의병을 합쳐 왜적에 맞섰습니다. 1603년에는 조정의 명으로 《난중사적》을 편찬했습니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 경상좌도 유생의 우두머리로서 당질 신홍도와 함께 '회퇴변무소'를 올렸고, 정인홍이 이황과 이언적의 문묘 출향을 주장하자 1611년 정인홍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안동교수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평생 은거해 학문에 전념했으며, 자식들에게도 과거를 위한 공부는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1614년 6월 27일 65세로 세상을 떠났고 사후 좌승지에 추증되었습니다.

의병과 기록

형 신심과 함께 수백 명의 의병을 모았고, 일직현에서 여러 의병장과 합세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조정의 명을 받아 《난중사적》을 엮어 의병 활동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성리학 논쟁에서의 역할

당시 정인홍이 스승 이황 등을 문묘에서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자, 이황의 문인 집안 출신으로서 이를 반박하는 상소에 앞장섰습니다. 경상좌도 유림의 목소리를 대표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가계와 저술

어머니는 병절교위 이지원의 딸인 벽진 이씨로 1593년 세상을 떠나 숙부인에 봉해졌고, 부인 순천 박씨는 박륜의 딸로 남편이 사망하기 두 달 전인 4월 16일에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딸 셋은 김유엽, 임내중, 박종경에게 출가했습니다. 후손 신돈식이 저술을 모아 《성은선생일고》를 간행했고, 아버지 신원록의 효행과 학풍이 아들 세대로 이어졌다고 평가됩니다.

묘소

의성 고을 남쪽 오토산 태향(兌向)의 언덕에 부인 순천 박씨와 합장되었다고 전합니다.

후손

장남 신적도는 건원릉 참봉을 지내고 이조참의에 추증되었고, 차남 신달도는 홍문관 수찬으로 영사공신에 들었으며 도승지에 추증되었습니다. 삼남 신열도는 사헌부 장령을 지냈고 신달도와 함께 단구서원에 배향되었습니다. 후손 신돈식(1848~1932)이 저술을 정리해 《성은선생일고》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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