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동제사 설립·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 대리·외무총장 (호 예관)
| 생몰 | 1880 ~ 1922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고령 신씨 |
신규식(申圭植, 1880~1922)은 대한제국 육군 장교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호는 예관(睨觀)·여서·일민·청구·한인이며, 중국에서는 신정(申檉)이라는 이름을 썼습니다. 아버지는 중추원 의관 신용우(申龍雨)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그가 한성에서 태어나 집안의 본향인 충청북도 청원(지금의 청주)에서 자랐다고 적고, 다른 자료는 청주 출생으로 적습니다.
1898년 관립한어학교에 입학했고, 2년 뒤 육군무관학교에 진학하여 졸업 후 참위·부위로 진급했습니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지방 진위대와 연락해 거사를 꾀하다 실패하고 음독자살을 시도했는데, 이때 오른쪽 눈 신경이 마비되어 흘겨보는 모습이 되자 스스로 '예관(睨觀, 흘겨본다)'이라 불렀습니다. 이후 대한자강회·대한협회에 참여하고 문동학교·중동학교·청동학교 등의 설립에 관여했으며, 1909년 대종교에 입교했습니다. 1910년 나라를 빼앗기자 다시 음독했으나 나철에게 구조되었습니다.
1911년 상하이로 망명하여 한국인으로는 처음 쑨원의 동맹회에 가입하고 신해혁명에 참여했습니다. 1912년 독립운동 단체 동제사(同濟社)를 조직해 이사장이 되었고, 중국 혁명가들과의 연대를 위해 신아동제사를 발기했습니다. 1913년 박달학원을 세워 박은식·신채호 등을 강사로 초빙했고, 1915년 박은식과 대동보국단을 조직했으며, 1918년에는 신한청년당 조직을 이끌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1919년 11월 법무총장에 취임하고, 국무총리 대리와 외무총장을 겸했습니다. 1921년 특사로 광둥의 중화민국 정부에 가서 대총통 쑨원을 만나 국서를 전하고 임시정부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1922년 임시정부의 내분이 깊어지자 병상에서 25일간 음식을 끊었고, 같은 해 9월 25일 상하이 프랑스 조계의 집에서 독립을 기원하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서로 『한국혼(韓國魂)』과 시집 『아목루(兒目淚)』가 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처음 상하이 훙차오로의 만국공묘(萬國公墓)에 안장되었습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