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촛불』·『슬픈 목가』의 전원 시인
| 생몰 | 1907 ~ 1974 |
| 시대 | 근현대 (일제강점기~대한민국) |
| 본관 | 영월 신씨 |
신석정(辛夕汀, 1907~1974)은 한국 현대 시단을 대표하는 전원 시인으로, 본관은 영월입니다. 본명은 신석정(辛錫正)이며, 아호로 석정(夕汀·釋靜·石汀) 외에 석지영·호성·소적 등을 썼습니다. 1907년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에서 간재 전우에게 유학을 배운 아버지 신기온(辛基溫)과 어머니 이윤옥의 3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 신제열은 부안 유학자 신관열의 아우로, 이 집안은 영월 신씨 일옹공파에 속합니다.
부안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고향에서 한문을 공부했습니다. 1924년 ‘소적’이라는 필명으로 「기우는 해」를 『조선일보』에 발표했습니다. 1930년 상경해 불교전문강원(지금의 동국대학교 전신)에서 석전 박한영에게 불전을 배웠습니다. 1931년 『시문학』 3호에 「선물」을 발표하며 정지용·박용철·김영랑 등과 함께 시문학파로 활동했습니다.
1935년 귀향해 부안 선은동에 집 ‘청구원(靑丘園)’을 짓고 나무를 가꾸며 시를 썼습니다. 이곳에서 첫 시집 『촛불』(1939)과 『슬픈 목가』(1947)를 냈습니다. 일제 말기에는 검열을 피해 발표 없이 창작만 이어 갔고, 창씨개명을 거부했다고 전합니다. 광복과 6·25를 거치며 현실 참여와 역사의식이 짙은 시로 나아갔습니다. 1952년 전주로 옮겨 전주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일하며 ‘비사벌 초사’에서 여생을 보냈고, 『빙하』(1956), 『산의 서곡』(1967), 『대바람 소리』(1970)를 펴냈습니다. 부안 출신 기생 시인 이매창의 시를 번역해 널리 알리기도 했습니다.
1958년 전라북도 문화상, 1968년 한국문학상, 1973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받았습니다. 1974년 7월 6일 세상을 떠나 임실군 관촌면에 묻혔다가, 2000년 부안군 행안면 역리의 선영으로 옮겨졌습니다. 부안의 신석정 고택은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2011년 석정문학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영월 신씨 일옹공파종회는 해마다 이곳에서 신석정시문학상 시상식을 엽니다. 위키백과 영산 신씨 문서의 인물 목록에도 이름이 있으나, 디지털부안문화대전과 문중 기록은 영월 신씨로 적고 있습니다.
전라북도 부안군 행안면 역리 선영 (2000년 임실에서 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