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언론인, '대한민국' 국호 제안·조선일보 사장 (호 우창)
| 생몰 | 1895 ~ 1953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고령 신씨 |
신석우(申錫雨, 1895~1953)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으로, 호는 우창(于蒼)입니다. 본관은 고령이며, 한말의 무신 신태휴(申泰休)의 아들입니다. 한성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학 전문부를 졸업했습니다. 1894년생으로 적는 연구도 있습니다.
졸업 뒤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여운형 등과 함께 고려교민친목회를 조직하고 등사판 신문 『아등(我等)의 소식』을 펴냈습니다. 1919년 4월 상하이에서 열린 첫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나라 이름을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하자고 제안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한'으로 망했는데 다시 쓸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에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다시 흥해 보자"고 하여 받아들여졌다는 일화가 전합니다. 임시정부에서는 교통총장을 지냈습니다.
1924년 귀국하여 경영난에 빠져 있던 『조선일보』를 송병준에게서 8만 5000원에 인수하였습니다. 월남 이상재를 사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부사장을 맡았다가, 1927년 이상재가 별세하자 사장에 취임해 1931년까지 재직했습니다. 그동안 서울 견지동에 새 사옥을 지었고, 1929년부터 귀향 남녀 학생 문자보급운동을 벌였는데, 이는 일제강점기 신문사가 벌인 민중운동 가운데 성공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아버지를 설득해 많은 돈을 들여 민족지를 키우는 데 힘썼고, 1927년 신간회가 창립될 때 창립총회의 사회를 맡고 간부로 활동했습니다. 1931년 사장 자리를 안재홍에게 넘기고 다시 상하이로 건너갔습니다.
광복 뒤 1949년부터 이듬해까지 중화민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를 지냈고, 1953년 부산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첫 부인은 독립운동가 이범석의 누나 이범숙이며, 뒤에 강익주와 재혼하여 3남 2녀를 두었다고 합니다. 종교는 개신교(침례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