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분 宋玢

송송례의 아들, 임유무 제거의 주역, 첨의좌중찬·낙랑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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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239 ~ 1318
시대고려 후기
본관여산 송씨

생애 약력

송분(宋玢)은 고려 후기의 관리로, 여산 송씨 중시조 송송례의 아들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그의 생몰년을 1239년(고종 26)~1318년(충숙왕 5)으로 적고 있습니다. 1270년 무인집정자 임유무를 처단해 무신정권을 끝내는 데 공을 세웠고, 원 간섭기에는 첨의찬성·지도첨의사사 등을 지낸 인물로 소개됩니다.

1270년(원종 11) 아버지 송송례가 임유무를 제거할 때 송분은 위사장(衛士長)으로 활약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지휘하던 삼별초의 신의군(神義軍)을 투입해 정변을 성공시켰고, 이로써 무신정권이 무너지고 개경 환도가 실행되었습니다. 이듬해에는 세자 왕심(뒤의 충렬왕)이 원나라에 갈 때 상서좌승으로 따라갔습니다. 이때 원 황후의 청으로 낙산사의 관음여의주를 가져갔다고 합니다. 1273년에는 대장군으로 원나라 관리와 함께 합포(지금의 창원 마산)의 전함을 살폈고, 1279년 지신사가 되었습니다.

충렬왕 때 그는 일본 원정 준비의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1282년 지밀직사사로 경상도에서 전함을 수리했고, 1285년에는 경상도조선도지휘사로 큰 공역을 일으켰는데, 이 과정에서 백성을 심하게 억압했다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1290년 카다안(哈丹)의 침입 때는 개경 방어를 맡고도 강화도로 피했고, 여진과 쌀을 밀무역한 죄로 탄핵되어 파면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1298년 찬성사가 되어 하정사로 원나라에 다녀왔고, 이듬해 안향과 함께 감수국사를 맡았습니다. 1300년 무렵에는 전 밀직 유비(柳庇)의 모함으로 아들 송린·송서 등과 함께 투옥되었다가, 원나라 관리의 심문으로 무고임이 밝혀져 풀려났습니다. 같은 해 우중찬이 되고 추성찬화안사공신에 봉해졌으며 궤장을 받았습니다. 1303년에는 첨의좌중찬이 되어 낙랑공(樂浪公)에 봉해졌고, 1318년 중찬으로 치사했습니다. 시호는 양의(良毅)입니다. 아들로 송진·송린·송유·송서가 있으며, 이 가운데 송린은 지신공파, 송서는 정가공파의 파조가 되었습니다.

후손

아들 송린은 지신공파, 송서는 정가공파의 파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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