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후기 무신, 여량부원군에 봉해진 여산 송씨 중시조, 시호 정렬
| 생몰 | 1207 ~ 1289 |
| 시대 | 고려 후기 |
| 본관 | 여산 송씨 |
송송례(1207~1289)는 고려 후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여산입니다. 시조 송유익의 4세손으로, 문중은 그를 중시조로 모십니다. 출사 경위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으며 장군을 지냈다고 전합니다.
1270년(원종 11) 직문하성사로서 어사중승 홍문계와 함께 무신정권의 마지막 집권자 임유무를 주살하는 데 공을 세웠습니다(세계일보 등 일부 자료는 임연 일파를 제거했다고 적어 표현이 갈립니다). 무신정권이 끝나고 왕정이 복구되는 길목의 사건으로, 이 공으로 그는 이후 추밀원부사·동지추밀원사에 올랐고 1274년 제1차 일본 정벌에도 참여한 것으로 전합니다.
말년에는 찬성사로 치사했다가 이후 중찬으로 다시 치사했고, 충렬왕 때 여량부원군(礪良府院君)에 봉해졌습니다. 시호는 정렬(貞烈)입니다. 맏아들 송염과 둘째 아들 송분 두 갈래에서 오늘의 다섯 파가 나뉘었다고 정리되므로, 송송례는 여산 송씨 계보에서 사실상 모든 파의 출발점이 됩니다.
1270년의 거사는 임유무 정권의 붕괴로 이어졌고, 고려 정부는 개경으로 환도했습니다. 송송례는 이어 원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고(1273) 1274년 일본 정벌에 관여하는 등 원 간섭기 초 고려의 대외 관계 한가운데서 활동했다고 전합니다.
문중의 정리에 따르면 맏아들 송염의 아들들(송운·송방영·송원미)이 원윤공파·밀직공파·소윤공파를, 둘째 아들 송분의 아들들(송린·송서)이 지신공파·정가공파를 열었습니다. 조선 시대 인물의 상당수가 지신공파와 정가공파에서 나왔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산 송씨 파별 설명을 참고하세요.
묘소의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맏아들 송염의 후손은 원윤공파·밀직공파·소윤공파로, 둘째 아들 송분의 후손은 지신공파·정가공파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