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동래성을 지키다 순절한 동래부사, 호 천곡, 시호 충렬, 지신공파

| 생몰 | 1551 ~ 1592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여산 송씨 |
송상현(1551~1592)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산, 지신공파에 속합니다. 자는 덕구(德求), 호는 천곡(泉谷)·한천(寒泉), 시호는 충렬(忠烈)입니다. 전라도 고부군 천곡(지금의 정읍시)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송복흥, 어머니는 안동 김씨입니다. 1576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 정자, 사헌부 지평, 종계변무사 질정관, 배천군수 등을 거쳤고, 1591년 집의로서 통정대부에 올라 동래부사로 임명되었습니다.
1592년 음력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 부산진성이 함락되자 일본군은 동래성 남문 밖에 목패를 세워 길을 빌려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송상현은 "싸워서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는 뜻의 글을 목패에 적어 항전의 뜻을 밝혔다고 합니다. 4월 15일 성이 위태로워지자 그는 조복을 입고 북쪽 임금께 절한 뒤 성문 누각에 앉은 채로 순절했습니다.
일본 쪽이 그의 충절에 감탄해 동문 밖에 장사 지내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시신을 찾지 못해 투항했다는 헛소문이 돌기도 했다고 전합니다. 첩 한금섬도 그를 따라 순절했습니다. 1595년 청주로 이장되었고, 사후 이조판서와 좌찬성에 추증되었습니다.
동래성 전투는 부산진성에 이어 일본군이 맞닥뜨린 두 번째 큰 성이었습니다. 송상현은 군민과 함께 성을 지켰으나 병력의 차이로 함락되었고, 이 전투는 동래부순절도(변박 그림)에도 그려져 전합니다. 일본군이 그의 충절을 높이 평가해 장사를 지내 주었다는 이야기는 전승으로 전합니다.

송상현은 부산 동래의 충렬사를 비롯해 개성 숭절사, 청주 신항서원과 충렬사, 정읍 정충사, 경성 화곡서원 등에 제향되었다고 합니다. 1742년(영조 때)에는 동래에 송공단이 만들어져 매년 음력 4월 15일 제사를 지낸다고 전합니다. 송공단은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11호입니다. 그를 다룬 영상물로 MBC 드라마 《임진왜란》(1985~1986)과 KBS 《징비록》(2015)이 있습니다.
1595년(선조 28) 청주로 이장했다고 하며, 충신문을 세웠습니다. 첩 한금섬은 그의 묘 옆에 묻혀 있다고 합니다.
정부인 성주 이씨와의 사이에 장남 송인급(1576~1608)과 차남 송효급(1579~1636)을 두었고, 동생으로 송상인(1569~1631)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