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산 송씨의 시조, 고려 때 진사로 공을 세워 여산군에 봉해졌다고 전함

| 시대 | 고려 |
| 본관 | 여산 송씨 |
송유익(宋惟翊)은 여산 송씨(礪山 宋氏)의 시조로 모셔지는 고려 때의 인물입니다. 여러 자료는 그가 진사(進士)로서 나라에 공을 세워 여산군(礪山君)에 봉해졌고, 세상을 떠난 뒤 은청광록대부 추밀원부사에 추증되었다고 전합니다. 생몰 연대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족보와 이를 옮긴 자료는 그의 선계를 중국 경조(京兆) 출신으로 당나라 호부상서를 지낸 송주은(宋周殷)으로 이어, 송유익을 송주은의 11세손으로 적습니다. 다만 송주은은 당나라 정사에 보이지 않아 실증하기 어렵다는 점이 위키백과 등에서 함께 지적됩니다. 그러므로 시조 이전의 계보는 문중 전승으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본관 여산은 오늘날 전북 익산시 여산면으로, 충남과의 경계에 있습니다. 문중은 송자영의 아들 송유익·송천익·송문익이 각각 여산 송씨·은진 송씨·서산 송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전하지만,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여산 송씨 쪽 족보 외에는 없다고 언론 기사에서도 밝힙니다. 시조에서 중시조 송송례에 이르는 세계는 4세 차이로 전해집니다.
여산(礪山)은 옛 여량현(礪良縣)과 낭산현(朗山縣)이 합쳐져 생긴 이름입니다. 합쳐진 때를 1399년 여산현 개칭으로 적는 자료도 있고 1402년(태종 2) 두 현이 합쳐졌다고 적는 자료도 있어 연도는 갈립니다. 여량현은 태종의 비 원경왕후 민씨의 외향이라는 이유로 1436년(세종 18) 군으로 승격되었고, 1914년 군면 폐합 때 익산에 편입되었습니다.
묘소의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본관지 여산면에 재실이 있다고 전해집니다.
후손은 시조의 4세손 송송례를 거쳐 원윤공파·밀직공파·소윤공파·지신공파·정가공파의 다섯 파로 이어지며,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298,231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