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산 송씨(礪山 宋氏) — 고려 진사 송유익을 시조로, 중시조 송송례(여량부원군) 아래 다섯 파로 이어진 송씨의 큰 본관으로, 전북 익산 여산면을 본관으로 합니다. 정순왕후와 송상현·송인명 등을 배출했습니다.
고려 진사 송유익을 시조로, 중시조 송송례(여량부원군) 아래 다섯 파로 이어진 송씨의 큰 본관으로, 전북 익산 여산면을 본관으로 합니다. 정순왕후와 송상현·송인명 등을 배출했습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여산 송씨 인구는 약 298,231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송씨라도 본관(여산)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여산 송씨(礪山 宋氏)는 전북 익산시 여산면을 본관으로 하며,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298,231명으로 집계된 큰 성씨입니다. 같은 해 송씨 전체는 683,494명으로 18위였고 본관은 172개로 기록되는데, 그중 인구가 가장 많은 것이 여산 송씨와 은진 송씨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영의정 송질과 좌의정 송인명 등 상신 2명,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를 배출했고 과거 급제자가 357명에 이르는 문벌로 소개됩니다.
시조 송유익(宋惟翊)은 고려 때 진사로서 나라에 공을 세워 여산군에 봉해졌고, 세상을 떠난 뒤 은청광록대부 추밀원부사에 추증되었다고 전합니다. 문헌은 그의 선조를 중국 경조 출신으로 당나라 호부상서를 지낸 송주은으로 잇고 송유익을 11세손으로 적지만, 송주은은 당나라 정사에서 확인되지 않아 실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따릅니다. 시조 이전의 선계는 문중 전승으로 읽는 것이 안전합니다.
여산은 옛 여량현과 낭산현이 합쳐져 생긴 지명입니다. 합쳐진 때를 1399년 여산현 개칭으로 적기도 하고 1402년(태종 2) 두 현의 병합으로 적기도 해 연도가 갈립니다. 여량현은 태종의 비 원경왕후 민씨의 외향이라는 이유로 1436년(세종 18) 군으로 승격되었고, 1914년 군면 폐합 때 익산에 편입되었습니다. 원경왕후의 외조부가 여산 송씨 송선이라는 설명이 소개되지만 이 부분은 다른 사료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시조의 4세손 송송례(宋松禮, 1207~1289)는 고려 후기 무신정권을 끝낸 공으로 여량부원군에 봉해져 문중의 기틀을 놓았기 때문에 중시조로 모십니다. 그의 맏아들 송염의 후손은 원윤공파·밀직공파·소윤공파로, 둘째 아들 송분의 후손은 지신공파·정가공파로 나뉘어 모두 다섯 파로 정리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파별 카드를 참고하세요.
송씨는 본관이 많아 이름만으로는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문중 전승에는 송자영의 아들 송유익·송천익·송문익이 각각 여산·은진·서산 송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은진 송씨는 고려 판원사로 은진군에 봉해진 송대원을 시조로 세계를 잇고 이 형제설을 따로 확인할 자료가 없다는 점이 지적됩니다. 은진 송씨에는 송시열·송준길이, 진천 송씨에는 문하평장사 진천백 송인이 중시조로 알려집니다. 서산·야로(冶爐)·연안·신평·남양·홍주·청주 송씨 등은 규모가 작고, 청주 송씨 시조 송유경은 여산 송씨와 전혀 다른 집안입니다. 같은 이름 송인이라도 진천 송씨의 고려 송인과 여산 송씨의 조선 부마 송인은 다른 사람이니 본관을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이 항목에는 야성 송씨 자료를 확인하지 못했고, 위키백과에는 '야로 송씨'로 표기됩니다.
원윤공파는 개성원윤(開城元尹)을 지낸 송운(宋惲)을 파조로 합니다. 송운은 고려 충렬왕 때 여량부원군에 봉해진 송송례의 맏아들 송염(宋琰)의 아들로, 밀직공파·소윤공파와 함께 송염 계통의 세 파 가운데 하나입니다.
송운의 6세손 송간(宋侃)은 세조 때 형조참판을 지냈고, 단종이 해를 입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은거해 애곡했다고 전합니다. 조선 중기의 학자 구봉(龜峯) 송익필도 이 파로 정리되며, 서얼이라는 한계를 학문으로 넘어 김장생을 길러 낸 예학의 선구자입니다.
임진왜란 때에는 고흥(옛 흥양) 출신의 송대립·송희립 형제가 이 파에서 나왔다고 알려져, 이순신 휘하와 고향 첨산에서 싸운 무장들을 배출한 파로 기억됩니다. 전라남도 고흥 일대에 집성촌이 있다고 전합니다.
원윤공파와 소윤공파는 같은 항렬표를 쓰는 것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인 항렬자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어 해당 파의 족보로 확인하세요.
밀직공파는 고려 후기에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지낸 송방영(宋邦英, ?~1307)을 파조로 합니다. 송방영은 여량부원군 송송례의 맏아들 송염(宋琰)의 아들로, 원윤공파·소윤공파와 같은 대에 갈라졌습니다. 밀직사는 고려 후기 왕명 출납과 군사 기밀을 맡은 중요한 관서이며, 송방영은 그 부사를 지냈다고 전합니다.
송방영은 1307년 원나라의 수도 대도(大都, 지금의 베이징)에서 생을 마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 후기 원 간섭기에는 사신이나 왕을 따라 원나라에 오래 머무는 관료가 많았으니, 그 흐름 속의 일로 읽힙니다.
경상북도 영덕 지역에 이 파의 집성촌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파조 이후 대표 인물에 대해서는 이 초안에서 별도로 확인한 자료가 많지 않아, 후손이 알려 주시면 보강할 수 있습니다.
항렬은 원윤공파·소윤공파와 달리 밀직공파의 항렬표를 따로 쓰는 것으로 정리됩니다. 구체적인 항렬자는 파 족보나 종친회에서 확인하세요.
소윤공파는 소윤(少尹)을 지낸 송원미(宋元美)를 파조로 합니다. 송원미 역시 여량부원군 송송례의 맏아들 송염(宋琰)의 아들로, 원윤공파·밀직공파와 같은 대에 갈라졌습니다. 소윤은 고려 때 개경 등의 부(府)에서 장관을 돕던 관직입니다.
송염의 세 아들이 나눈 파 가운데 하나입니다. 전라북도 부안과 익산 일대에 이 파의 집성촌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며, 본관지 여산면의 재실과 금마면의 세거 이야기도 이 지역에서 전해집니다.
원윤공파와 소윤공파는 같은 항렬표를 쓰는 것으로 정리되어 있어, 두 파는 항렬자가 같다는 뜻입니다. 항렬자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어 족보로 확인하셔야 합니다.
소윤은 고려 때 부(府)의 장관 아래에서 일을 돕던 관직으로, 파조 송원미의 구체적인 생몰과 사적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 파의 대표 인물에 관해서도 확인한 자료가 많지 않습니다. 후손이 계시면 파보와 종친회 자료로 보강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신공파는 고려 때 지신사(知申事)를 지낸 송린(宋璘)을 파조로 합니다. 송린은 송송례의 둘째 아들 송분(宋玢)의 아들이며,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지신사는 왕명의 출납을 맡던 요직으로 조선의 승지에 해당합니다.
조선 시대에 많은 인물을 배출한 파입니다. 단종의 장인으로 여량부원군에 봉해졌다가 복위 사건으로 처형된 송현수와 그의 딸 정순왕후, 송세림·송세형 형제,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로 순절한 천곡(泉谷) 송상현(1551~1592)과 아우 송상인, 송성명·송진명 형제, 영조 때 탕평책을 이끈 송인명 등이 이 파에서 나왔습니다.
송상현은 사후 부산 동래의 충렬사·송공단을 비롯해 청주·정읍 등 여러 곳에 모셔졌습니다. 송현수의 묘소는 경기도 과천 선산에서 숙종 때 찾아 수축되었고, 정조 때 영월 장릉 배식단에 배향되었습니다. 청주 충렬사 일대에는 송상현을 모신 곳과 송현수 단소, 문중 선산이 있는 것으로 소개됩니다.
항렬은 지신공파의 항렬표를 따로 씁니다. 집성촌과 종친회 연락처는 지신공파 종친회에서 확인하세요.
정가공파는 정가공(正嘉公) 송서(宋瑞)를 파조로 합니다. 송서는 송송례의 둘째 아들 송분(宋玢)의 아들로, 지신공파 파조 송린과 형제입니다.
지신공파와 함께 많은 인물을 배출했습니다. 중종반정 공신으로 영의정에 오른 송질(1454~1520)과 그 손자로 중종의 서녀 정순옹주와 혼인한 서예가 송인(1517~1584), 성종 즉위에 공을 세워 좌리공신 2등에 오른 송문림, 《여산송씨족보》 초고를 만든 송언신이 이 파에서 나왔다고 전합니다. 송질의 딸은 영의정 홍언필에게 시집갔고 외손자 홍섬도 영의정이 되어, 이 집안의 혼맥이 조선 전기 상류층과 이어졌음을 보여 줍니다.
근현대 인물로는 육군참모총장과 내각수반을 지낸 송요찬이 알려져 있고, 경기도 일대에 집성촌이 있다고 합니다. 서울 양재동의 송동마을도 이 문중과 관련해 소개되나, 어느 파의 선산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항렬은 정가공파의 항렬표를 따로 쓰며 24세부터 항렬이 시작된다고 정리됩니다. 구체적인 글자는 파보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송유익(여산 송씨의 시조), 송송례(고려 후기 무신), 송현수(단종의 장인), 정순왕후(단종의 왕비), 송질(중종반정 정국공신), 송인(중종의 서녀 정순옹주의 부마), 송상현(임진왜란 때 동래성을 지키다 순절한 동래부사), 송익필(서인 예학의 뿌리를 놓은 학자), 송대립(임진왜란·정유재란 때 이순신 휘하와 고흥에서 싸운 무장), 송희립(이순신 휘하의 직속 군관으로 한산·명량·노량에서 싸운 수군 장수), 송인명(영조 때 탕평책을 이끈 좌의정), 송언신(《여산송씨족보》 초고를 편집한 조선 중기 문신), 송요찬(육군참모총장·계엄사령관을 거쳐 5·16 직후 국방부 장관·내각수반을 지낸 군인·정치인)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 여산 송씨는 지신공파와 정가공파에서 특히 많은 인물을 냈습니다. 단종의 장인이자 복위 사건으로 처형된 송현수, 임진왜란 때 동래성을 지킨 송상현, 영조의 탕평정치를 이끈 송인명은 지신공파에서, 중종반정 공신으로 영의정에 오른 송질과 해서에 뛰어난 부마 송인은 정가공파에서 나왔다고 전합니다. 원윤공파에서는 서얼의 한계를 넘어 성리학과 예학을 이룬 송익필, 이순신 휘하에서 싸운 송대립·송희립 형제가 알려져 있습니다. 세조 때 형조참판을 지낸 송간은 단종이 해를 입자 벼슬을 버리고 은거해 슬퍼했다고 전하며, 송문림은 성종 즉위에 공을 세워 좌리공신 2등에 올랐습니다.
2000년 통계청 발표에서 여산 송씨는 약 7만 2,763가구, 23만 2,753명이었고,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298,231명으로 늘었습니다. 지역으로는 본관지인 전북 익산을 비롯해 전남 고흥, 경북 영덕, 경기·서울·충청 일대에 두루 퍼져 사는 것으로 소개됩니다. 인구 통계는 조사 연도마다 다르니 참고용으로만 보세요.
다섯 파는 비슷한 이름이 많아 헷갈리기 쉽습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집안에 전하는 족보나 파보에서 시조 송유익으로부터 몇 세손인지, 그리고 송염(원윤·밀직·소윤)과 송분(지신·정가) 가운데 어느 줄인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정가공파는 24세부터 항렬이 시작된다고 하니 항렬자도 단서가 됩니다. 족보가 없다면 가까운 어르신이나 여산송씨종친회에 문의하세요. 한자 이름으로 본관을 먼저 확인한 뒤 파를 찾는 순서가 편합니다.
조선 시대 여산 송씨는 영의정 송질과 좌의정 송인명 등 상신 2명, 왕비 1명(정순왕후), 판서급 인물 다수, 과거 급제자 357명을 냈다고 소개됩니다. 고려 말~조선 초에는 송송례·송현수처럼 공신과 외척으로, 조선 중기에는 송상현·송희립처럼 임진왜란의 충절로, 후기에는 송인명처럼 탕평정치의 관료로 이어진 점이 이 집안의 큰 흐름입니다.
여산 송씨는 조선 왕실과 혼맥이 두터웠습니다. 단종의 비 정순왕후 외에도 세종의 여덟째 아들 영응대군의 부인 대방부부인, 정종의 서자 수도군과 선조의 서자 인흥군의 부인이 여산 송씨였고, 태종의 서녀 숙녕옹주와 중종의 서녀 정순옹주의 부마도 이 집안에서 나왔다고 소개됩니다.
근현대에는 육군참모총장과 내각수반을 지낸 송요찬이 대표적이며, 법무부 장관을 지낸 송정호(제52대), 전주시장과 전라북도지사를 지낸 송하진, 서예가 송성용, 동양화가 송계일, 전북은행장을 지낸 송주인, 모나미 사장을 지낸 송삼석 등이 소개됩니다. 송호림은 육군 중장으로 제9대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인물별 본관은 본인 확인이 필요하니 족보로 대조하세요.
《여산송씨족보》는 임진왜란 때 집안에 전하던 보첩이 불타 없어진 뒤, 송언신이 1606년 서문과 함께 친필 초고를 만들고 1610년 족질 송일이 청주목사로서 간행한 초간본(경술보)이 중요합니다. 1653년(효종 4) 송희업이 간행한 판본은 시조 송유익부터 19세손까지를 싣고 부록 2권을 갖춘 것으로, 17세기 이전 족보가 드물다는 점에서 희귀 자료로 평가되어 1991년 시도유형문화재 제139호로 지정되었습니다(소재지가 여주로 소개되나 보관 기관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족보는 출생 순으로 적고 적서를 구분하며, 14세손까지는 양자 기록이 거의 없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족보 관리는 여산송씨종친회가 맡고 있다고 합니다.
본관지 익산 여산면에는 여산송씨 재실이 있고, 같은 익산 금마면은 송석손이 은거한 곳으로 소개됩니다. 청주 충렬사 일대에는 송상현을 모신 곳과 문중 선산이 있고, 서울 양재동 송동마을은 예전 문중 선산과 집성촌이 있던 곳으로 알려집니다. 송상현을 기리는 유적으로는 부산 동래의 충렬사와 송공단(부산광역시 기념물 제11호), 정읍의 정충사 등이 있고, 고흥에는 송대립·송희립 형제를 기리는 사당이 있다고 전합니다. 여산향교(대성전)도 본관지의 대표적 유적입니다.
항렬자는 파마다 다릅니다. 원윤공파와 소윤공파는 같은 항렬표를 쓰는 것으로 정리되고, 밀직공파·지신공파·정가공파는 각자의 표를 쓰며 정가공파는 24세부터 항렬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구체적인 글자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어 이 글에서는 싣지 않으니, 반드시 해당 파의 족보나 종친회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종친회의 연락처와 시제(제향) 일정은 해마다 달라질 수 있어 이 글에는 싣지 않았습니다. 시조와 중시조의 제향, 파별 모임 소식은 여산송씨종친회와 각 파 종친회에 직접 문의하시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여산 송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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