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산송씨족보》 초고를 편집한 조선 중기 문신, 호 호봉, 정가공파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여산 송씨 |
송언신(宋言愼)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산이고 호는 호봉(壺峯)입니다. 족보 후서 끝에 "후손 호봉 송언신 편집"이라는 기록이 있어 호가 확인됩니다. 문중에서는 정가공파에 속한 인물로 정리됩니다. 생몰 연대와 관직 이력은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대사헌·함경도 관찰사 이력으로 알려진 정언신은 다른 인물이므로 혼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송언신의 이름이 오늘 문중사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여산송씨족보》의 초고를 만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1606년(선조 39) 쓴 서문에서, 집안에 전해 오던 보첩이 임진왜란 중 불타 없어졌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송원경이 기록한 보첩을 구했으나 내용이 소략했고 이성(異姓)은 자세히 다루면서 같은 종씨는 간략히 다루는 등 불완전했습니다.
그는 여러 자료를 참고해 친필 초고본을 만들었으나 직접 간행하지는 못했습니다. 이 초고를 바탕으로 1610년 족질 송일이 청주목사로 있으면서 경비를 마련해 간행한 것이 여산송씨족보의 초간본(경술보)이며, 훗날 1653년 송희업이 간행한 판본은 1991년 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1610년 초간본은 1책의 목판본으로, 표지·서문·후서·보도(족보 도표)·발문으로 구성됩니다. 보도는 6층 횡간이며 자녀는 출생 순으로 적고 적자와 서자를 엄격히 구분했으며, 이성(異姓)은 사위와 외손 2대까지만 실었습니다. 이 초간본은 여산 송씨 족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자료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됩니다. 당진현감 송요인, 단양군수 송선, 전의현감 송빙 등이 간행을 도왔습니다.
확인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