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의 장인, 여량부원군,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 지신공파
| 생몰 | 1457 |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여산 송씨 |
송현수(?~1457)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여산 송씨 지신공파에 속하며 아버지는 지중추원사 송복원입니다. 1448년 풍저창부사를 지냈고, 1454년 딸이 단종의 왕비(정순왕후)로 간택되자 동지돈녕부사와 여량부원군에 봉해지고 이어 판돈녕부사에 올랐습니다.
1455년 세조가 왕위에 오르고 단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뒤, 1457년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될 때 그도 하옥되었습니다. 권완이 그가 역모를 꾀했다고 증언해 한때 장형 100대와 먼 지방의 관노 처분을 받았으나, 같은 해 10월 금성대군 등의 단종 복위 모의가 발각되자 사형이 명령되어 경기도 과천에서 교살되었습니다. 실록은 이 소식을 들은 단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기록합니다.
사후에는 한참 뒤에야 명예가 회복되었습니다. 1698년(숙종 24) 단종과 정순왕후가 복위될 때 복권되었고, 1791년(정조 15) 영월 장릉의 배식단에 배향되어 정민(貞愍)이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 정조는 후손을 등용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합니다.
1454년 정월 14세의 송씨가 단종의 비로 간택되면서 송현수의 집안은 하루아침에 외척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단종이 선위하자 왕실의 인척이라는 처지가 곧 위험으로 바뀌었고, 그는 단종 복위 운동과 얽혔다는 혐의를 피하지 못했다고 전합니다.
숙종 때의 복권(1698)과 정조 때의 배향(1791)은 단종 관련 인물들이 수백 년 뒤 차례로 신원된 흐름 속에 있습니다. 그의 딸 정순왕후는 같은 때 왕비로 복위되어 사릉에 모셔졌습니다.
숙종 때 경기도 과천의 선산에서 묘를 찾아 수축했고, 1791년에는 무덤에 치제하고 작은 표석을 세우며 묘지기 2명을 두었다고 합니다. 청주 충렬사 일대의 문중 선산에도 그를 모신 단소가 있다고 소개되지만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들 송거는 1475년 특별히 과거 응시가 허락되었고, 조카 송영은 참판까지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