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반정 정국공신, 영의정에 오른 여산 송씨 정가공파의 대표 인물, 시호 숙정
| 생몰 | 1454 ~ 1520 |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여산 송씨 |
송질(1454~1520)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산, 자는 가중(可仲)입니다. 할아버지는 송만달, 아버지는 송공손이며, 여산 송씨 정가공파 계통의 대표적 인물로 꼽힙니다. 1477년(성종 8)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사헌부 지평, 병조정랑, 승정원 승지를 거치고 황해도·평안도 관찰사, 형조참판, 예조판서, 형조판서, 경기도관찰사 등을 두루 지냈습니다.
1506년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정국공신 3등에 책록되고 여원군(礪原君)에 봉해졌습니다. 1509년에는 함경도체찰사로 나가 동북 육진 지방의 백성을 옮겨 살게 하는 사민입거책을 제시했고, 이때 《이배도》를 제작해 임금께 올렸다고 전합니다. 1512년 우의정, 1513년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고 여원부원군에 진봉되었습니다. 이후 대간의 탄핵으로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시호는 숙정(肅靖)입니다.
그의 집안은 조선 전기 명문가와 혼맥으로 이어졌습니다. 맏아들 송지한은 목사를 지냈고(손자가 서예가 송인), 둘째 아들은 송지간입니다. 딸은 영의정 홍언필에게 시집갔고, 외손자 홍섬 역시 영의정이 되었다고 소개됩니다.
1509년 송질이 함경도체찰사로서 제안한 사민입거책은 남쪽의 백성을 북방 육진에 옮겨 살게 해 변경을 굳히는 방안으로 소개됩니다. 그는 이때 지형과 방비를 그린 《이배도》를 만들어 올렸다고 전합니다.
묘와 신도비에 관한 별도 문서가 있다고 하나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손자 송인은 중종의 서녀 정순옹주와 혼인한 서예가이며, 외손 홍섬은 영의정을 지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