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 때 좌리공신, 여산군, 대사헌·관찰사
| 생몰 | 1411 ~ 1476 |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여산 송씨 |
송문림(宋文琳, 1411~1476)은 조선 전기의 문신입니다. 본관은 여산이며 정가공파에 속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그는 정가공파 파조 송서의 아들 송윤번(宋允蕃)의 증손입니다. 할아버지는 송전(宋琠), 아버지는 송인산(宋仁山)입니다.
처음에는 음직으로 경덕궁직에 보임되었고, 1451년(문종 1) 경상도 행대감찰을 거쳐 호조좌랑에 올랐습니다. 1457년(세조 3) 소윤으로 있으면서 알성시에 병과로 급제했습니다. 이어 사간원 지사간과 사헌부 집의를 거쳐 지병조사와 병조참의가 되었습니다. 1463년에는 가선대부에 올라 전라도관찰사로서 민정을 살폈고, 이듬해 병조참판과 예조참판을 지냈습니다. 다시 충청도관찰사로 나갔다가 1467년 대사간이 되었고, 대사헌으로서 국가의 기강을 세우는 데 힘썼습니다.
예종이 세상을 떠나자 청시사(請諡使)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그 공으로 전답과 노비를 받았습니다. 1470년(성종 1) 호조참판이 되었으며, 이듬해 성종 즉위에 공을 세워 좌리공신(佐理功臣) 2등에 책봉되고 여산군(礪山君)에 봉해졌습니다. 1472년에는 이조참판에 올랐고, 품계는 자헌대부에 이르렀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그를 직무에 충실하고 성품이 강직하며 무예에도 밝은 인물로 평가합니다. 문과 출신이면서도 병조의 요직과 여러 도의 관찰사를 두루 거친 것은 그의 문무 겸비를 보여 줍니다. 시호는 공무(恭武)입니다. 좌리공신은 1471년 성종의 즉위와 초기 정국 안정에 공을 세운 신하 70여 명에게 내린 공신호로, 송문림은 그 2등에 들었습니다. 그의 행적은 『세조실록』과 『성종실록』, 『국조방목』 등에 실려 있습니다. 송문림은 조선 초 정가공파가 중앙 관계에 자리 잡는 데 기여했으며, 같은 파에서 이후 영의정 송질과 부마 송인이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