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참모총장·계엄사령관을 거쳐 5·16 직후 국방부 장관·내각수반을 지낸 군인·정치인, 정가공파

| 생몰 | 1918 ~ 1980 |
| 시대 | 현대 |
| 본관 | 여산 송씨 |
송요찬(1918~1980)은 대한민국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본관은 여산, 정가공파에 속합니다.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1939년 일본군에 지원병으로 들어가 하사관까지 올랐다고 하며, 1945년 광복 뒤 군사영어학교를 거쳐 1946년 임관해 국군 창설기에 참여했습니다. 제주 4·3 진압, 대유격전, 6·25 전쟁 때 부대를 지휘했고 중장까지 올랐습니다.
1959년부터 1960년까지 육군참모총장을 지냈습니다. 1960년 4·19 때는 서울 계엄사령관으로서 시위대에 발포하려는 입장이었으나 동료 장성 최경록의 설득으로 발포 중지를 명령했다고 전합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을 지지해 이듬해까지 국방부 장관·외무부 장관·내각수반·경제기획원장을 맡았고, 1962년 화폐개혁 논란 끝에 물러났습니다.
1963년 박정희의 대선 출마에 반대하다 중앙정보부에 체포되었고, 6·25 때의 즉결 처분과 4·19 관련 혐의가 거론되었으나 1964년 공소기각되었습니다. 같은 해 선거에 후보로 나섰다가 10월에 사퇴했고, 이후 인천제철에서 일하다 1980년 10월 18일 미국 시카고에서 신장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제강점기 군 복무 이력은 평가에서 함께 논의되는 부분입니다.
송요찬의 이름은 4·19 때의 발포 중지 결정과 5·16 직후의 내각 참여로 함께 기억됩니다. 평가는 한쪽으로 모이지 않아 군의 정치 개입과 일제 말 지원병 경력을 문제 삼는 시각이 있는 반면, 장병 복지와 군인연금 제도에 힘썼다는 평가도 함께 소개됩니다. 두 면을 모두 놓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육군장으로 치러진 장례 뒤 충남 청양의 부친 묘역에 안장되었다고 합니다.